외손녀의 피부

전광투데이 승인 2022.01.24 11:13 의견 0


오봉산 정상에서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데 “띠로리~ 띠로리!” 누군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후배 한사람이 “응~ 나다! 그래 어떻게 됐는데? 그랬어! 그래 잘했다! 애 썼다. 나는 괜찮으니까 그런 소리는 말아라! 서운할 것이 뭐가 있겠냐? 그리고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 그러니까 나는 너와 애기 몸만 건강하면 되니까 아무 걱정 말아라. 그래 그럼 끊어라!”하는 것을 보고“누구에게 온 전화인가?”선배께서 묻자 “서울에 있는 저의 딸인데 금방 외손녀를 낳았다고 전화가 왔네요.”
“그러면 그 딸은 언제 결혼했는데?” “그러니까 작년 가을에 한 것 같거든요.” “그랬으면 아이를 빨리 가졌던 모양이네. 그나저나 자네가 외할아버지가 되신 것 축하드리네. 그런데 소감은 어떠신가?” “글쎄요. 특별히 무슨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고 그냥 무덤덤하네요.” “왜 외할아버지가 되었는데 무덤덤할까? 외손녀를 봐서 기쁘다든지, 아니면 신난다든지, 즐겁다든지 그런 소감이 있어야할 텐데 자네 혹시 가짜 외할아버지 아닌가?”
“가짜 외할아버지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허! 허! 헛!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결혼해서 아이가 늦게 생겼거든요. 그래서 몇 년 만에 아이를 낳으니 그때의 기분은 마치 이 세상을 전부다 가진 것뿐만 아니고 저만 아이를 낳은 것 같은 행복감에 몇날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그랬던 제가 외손녀를 낳았는데도 무덤덤하니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하면서 자꾸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무엇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외손녀 동영상을 촬영해서 보내왔는데 왜 이렇게 피부가 빨갛게 보일까요?”묻자 선배께서 “혹시 핏덩이라는 말 들어보았는가?” “핏덩이가 어째서요?” “자네도 생각해보게 방금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이렇게 빨개야 정상이지 그러면 서너 살 먹은 아이처럼 뽀송뽀송한 피부를 기대했는가?”
“아니 뽀송뽀송한 피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빨간 줄은 몰랐거든요.” “그랬어? 자네는 우리 막둥이 동생 손녀처럼 피부가 거무튀튀했으면 기절할 뻔했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도 아시다시피 우리 막둥이 동생 아들이 나이 서른 중반을 넘겼어도 장가를 못 보내고 있다가 어떻게 해서 장가를 보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빨리 안 들어서는 거야.”
“그러면 답답하셨겠네요.” “그랬지! 그러다가 어떻게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보통 사람은 임신(妊娠)기간이 10개월인데 8개월 만에 아기를 낳아버렸거든.” “그럼 조기출산을 하신 모양이네요.”
“그랬지! 그런데 제수씨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니까 병원에 갔는데‘저 애가 손녀입니다.’라고 병원 간호사가 알려주는 인큐베이터를 바라보니 ‘어른 주먹 보다 더 작은 아이의 피부가 잿빛으로 보일만큼 검은데다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듯 헐떡이는 것을 보니 저애가 정말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까?’걱정이 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저런 손녀가 태어나는가?’생각하니 기가 막히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는 거야.”
“저라도 그랬다면 정말 난감하였겠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가 점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백일쯤 되니까 얼굴이 확 바뀌더니 마치 천사 같이 변하더라는 거야!” “그랬으면 정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겠는데요.”
“그걸 어떻게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처음 막 보았을 때는 너무나 가냘프게 보이던 아이가 그렇게 변해서 예쁜 짓만 골라서 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니 자네도 외손녀 피부가 빨갛다고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예쁘게 잘 키울까? 그런 연구나 하게! 알겠는가?”/

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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