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의 고장 보성, 우리나라 의병사 종합판
2019/07/28 17:4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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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백범 김구, 홍암 나철, 송재 서재필 등 굴지의 애국지사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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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의장군 최대성
 
 3경 3보향의 고장 보성군은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 3경과 녹차의 고장 다향, 서편제의 본향 예향 그리고 예부터 충신열사가 많아 의향이라 불리어왔다.
농담 삼아 말하는 ‘보성가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말 과 같이 일본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보성군민의 용기와 패기에 붙여진 일본의 두려움의 공포였다.
2017년 보성군은 「보성의병사」 제작에 착수해 2018년 777명의 의병을 발굴해냈다. 평민 중심의 의병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경우에만 기록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보성사람들이 의병 활동에 가담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보성은 밀고자가 적어 일본이 의병을 색출해 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보성군민 전체가 의병을 지키고 의병활동에 도움을 주는 잠재적 의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임진왜란부터 양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까지 의병사 포괄
보성의 의병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부터 조국이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 간의 세월을 모두 포용하는 우리나라 의병사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한 나이에 의병 700여 명을 거병하여 전라좌의병을 창의했고, 임계영 장군이 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며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이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친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
병자호란에는 보성에서 우산 안방준 의병장이 호남병자창의소를 세워 창의했으며, 한말에는 머슴출신의 담살이  안규홍 의병장  배출하기도 했다. 호남에 가장 먼저 3.1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곳 또한 보성이며, 이는 호남지역 만세운동에 불을 댕겼다.
또한, 보성은 6.25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적 자원까지 겸비하고 있다.
▲근대적 사상가 죽천 박광전, 신분을 뛰어넘은 리더십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죽천 박광전 선생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창의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각각 67세와 72세다.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0세였음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100세도 넘는 나이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창의 격문에는 불참할 시 연좌제로 가족까지 벌하겠다는 내용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박광전 선생은 왕에 대한 충성이나 불참자에 대한 복수 보다 가족과 이웃, 민족을 구해야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민권사상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말 의병 활동에 나선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은 전국 유일의 머슴출신 의병장이다. 안규홍은 전투기술과 신출귀몰한 위장술로 인해 일본군이 신원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안규홍을 ‘거괴’로 분류, 일본군 중 가장 악랄한 육군 정규군 14연대를 파견해 안규홍 부대를 말살하려고 하기도 했다.
또한, 안규홍 부대에는 양반 유생들이 뜻을 함께하며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국정신으로 민족이 하나로 융합되는 항일투쟁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 백범 김구, 송재 서재필, 홍암 나철, 등 굴지의 애국지사와의 인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 ‘금신전선 상유십이’가 쓰인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보성의 열선루는 바로 조선 수군 재건의 현장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있게 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수군을 모병하고, 군량미를 확보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보성의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등과 함께 싸웠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약 40일간 피신 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아 보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민족 독립운동의 선각자 송재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보성군수 서광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하고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창립, 상해임시정부 활동 등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만들어 단군역사를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한 호남 의병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나철 선생은 유신회를 조직하고, 포츠머스 강화회의 참석, 을사오적 암살단을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 1세대이자 독립 운동의 아버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욱근 기자
[ 이욱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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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호 님ㅣ2019.07.31 15:01:0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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