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이원익과 이순신’
2019/08/11 18: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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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먼저 예견하는 총명함이 남다름을  선견지명이라 한다.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역적으로 몰렸다. 죽음을 앞둔 절체절명에 처한 이순신은 그의 입이 열 개라도 기가막혀 할말을 잊었다.
단 한명의 지원군 없이 외로움 속에서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오리정승 이원익’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죽음을 벗어나 보성군 회천면에 주둔하고 있는 배12척과 죽음을 각오한 수하들과 일치단결하여 득랸만에서 양식을 구축하고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해 나라를 지키신 성웅 이순신 장군!
만고에 충신 이순신을 알아본 “오리정승 이원익”의 안목에 선견지명함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임진왜란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누구요? 물으면 백이면 백 "이순신 이요" 하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님...!
그러나 오늘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기에 생략하고, 그 이순신 장군을 죽음 직전에서 살려 내고 조선을 임진왜란으로부터 구해 낸 역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때는 1592년 1월 1일. 무려 6등급을 뛰어넘어 '전라좌수영 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 요새 말로 대위계급에서 별 두개 소장으로 초특특급에 초초파격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과  '경상 우수영 원균' 그리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여기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내려 왔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이순신을 보고 이들이 가만 있었을 리가 있었겠는가? 시쳇말로 짠밥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밥그릇을 짝 깔아도 모자랄 정도로, 그러니 이 세 장군들이 시기질투는 당연하다고 보여진다. 특히 계급사회에서는 "모든 것은 계급으로 말한다"는 말처럼, 아직 이순신의 실력이 들어 나기 전이었으므로 이들의 불만은 너무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전쟁이 소강상태인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임금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200명) 모두...
"이순신은 역적이 오니 죽여야 하옵니다"하고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문무백관들 모두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고 선조임금(선조임금도 속으로는 동조함)을 압박하고, 심지어 이순신을 발탁해주고 6계급 파격으로 진급을 시키는데도 크게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반대를 못했으니, 당시 이순신의 역적누명 상황이 어떠했겠는가? 를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의 형을 집행을 못하고 있는가?
당시에 영의정 겸 도체찰사 (국가비상사태직무총사령관)인  '오리 이원익'이 선조임금의 어명으로 임진왜란의 전시상태에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시상태에서 아무리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외쳐도 '도체찰사'인 ㅡ이원익의 승락 없이는 선조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임금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 대사
"전하께서 전시 중에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을 못하옵니다" 라는 이원익의 이 말 한마디에 선조 임금도 체념을 하고 드디어 장장 이틀이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 했다는 선조임금이 이원익 도체찰사에게 건넨 이 말 한마디로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자, 당시에 문무백관 199명 대 1 즉 이원익 딱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자, 여기서 선조 임금과 문무백관들 모두가 왜 이원익 한 사람을 이기지 못했는가? 하면 당시에 유성룡를 비롯 중앙관료 그 누구도 현지 경상, 전라 수군 지역으로 시찰을 내려가 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원익은 두번씩이나 현지 수군 지역을 내려가서 현지 상황과 각 수군부대 및 장군들의 근무 실정과 전투준비에 대한 조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전쟁을 총 지휘를 하는 이원익도체찰사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형을 모면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명령을 받았다.
동년 1597년 8월 28일(음력 7월 16일)에 이순신의 백의종군으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판옥선 대부분이 불타거나 왜군에게 노획당하면서 원균이 대패하고,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청사에 남는 그 유명한 결사항전의 비장한 각오의 말...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의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명량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켰고, 도요또미 히도요시도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도망가는 왜적을 한척이라도 살려보낼 수 없다는 이순신의 결기로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이순신은 62전 62승이라는 전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이순신이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직전까지 간, 그 만고(萬古)의 충신 이순신을 알아보고 199대 1로 그리고 선조임금까지의 불신으로부터 이순신을 믿어준 '오리정승 이원익'의 탁월한 선견지명에 이순신을 살리고 도탄에 빠진 나라의 영토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정승 이원익이야 말로 萬古에 빛나는 충신이요, 나라의 보배중에 보배이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 높이 받들고 기념을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금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주변 강국들 간의 첨예한 갈등과 정치경제외교전에서 국가의 리드그룹들이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작금의 사태를 보고, 다시 한 번 이원익 과 이순신의 분신들이 5천년 사직을 지켜 낼 수 있는 충신열사가 그립습니다./ 이욱근 기자
[ 이욱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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