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쓰다 생긴 일

전광투데이 승인 2024.04.11 16:44 의견 0

오늘은 선후배 모임이 있어 선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기에 불러도 모르고 가셨어요?”하며 잘 아는 후배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자네 정말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계셨는가? 몸은 건강하시고?”
“저는 아직 그렇게 아픈 데는 없는 것 같으니 건강한 것 같아요. 그런데 형님들도 건강하시지요?” “자네 말대로 우리도 그리 아픈 데는 없으니 건강한 것 같아!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중인가?” “오늘 알바도 끝났으니 집에 가려고요.” “동생 집에 가려면 이쪽 아파트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은가?” “아직 모르고 계셨어요? 저는 저쪽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그랬어? 그랬으면 정말 잘했네. 그런데 그쪽 아파트가 상당히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돈 마련을 잘했던 모양일세.” “제가 직장 생활하면서 조금 모아 놓은 돈, 그리고 퇴직하면서 받아놓은 퇴직금을 합쳐도 조금 모자랐는데 다행히 집을 담보로 대출을 약간 받으니 장만할 수 있었는데 더군다나 새 아파트가 복층 구조에 또 정말 넓어서 마음에 들어서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구입했어요!”
“그러면 새 아파트로 이사하니 생활하기는 어떻든가 옛날에 비해 좋은 점이 물론 많았겠지?” “첫 번째 넓어서 좋더라고요. 옛날 좁은 아파트에 살 때는 큰집 작은집 식구들이 다 모이면 잠잘 곳이 없어 동생네 집으로 자러 가고 했는데 지금은 집이 널찍하니 아무 곳에서 나 드러누워도 잠을 잘 수 있으니 그것 하나는 정말 좋더라고요.”
“그러면 나쁜 점은 무엇이든가?” “집이 너무 넓다 보니 집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잠을 자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아니 그러면 벌써 각방 쓰는가?” “저는 진작부터 각방 쓰고 있어요.”
“그랬어? 아우님은 아직 각방 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네.”하며 후배와 헤어져 식당으로 향하면서 선배께서 “동생 자네도 혹시 각방 쓰고 있는가?” “아니요! 제 나이 아직 이팔청춘인데 왜 제가 각방을 쓴답니까?”
“그런가? 그러면 정말 다행일세! 그런데 사실 나는 전립선 때문에 밤이면 자꾸 화장실을 가거든, 그러다 보니 자네 형수에게 미안해서 진작부터 각방을 쓰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나쁜 점이 있더라고.”
“좋은 점은 무엇인데요?” “좋은 점은 혼자 자니까 이불 속에서 방귀를 뀌거나, 또 코를 골거나, 화장실 가느라 자꾸‘부스럭’ 거리더라도 옆에 사람이 없으니 미안하지 않아 좋은데 나쁜 점은 사람이 살다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 없어 그것이 문제더라고.” “안 좋은 일이라면 어떤 일이 생겼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자네 형수와 각방 쓰기 시작한 지 한 이삼 년이 지났을 무렵인데 어느 날 새벽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그대로 쓰러지면서 침대 모서리에 부딪혔던 모양이야!” “저런 정말 큰일 날뻔하셨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래서 집사람을 부르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요즘은 옛날하고 달라서 문을 닫아 놓으면 잘 들리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도 어떻게 기어서 방문을 두드리니 집사람이 문을 열어보더니 깜짝 놀랐을 게 아닌가? 그래서 119를 부르고 급히 병원에 이송되고 의사가 보더니 ‘뇌진탕이니 빨리 수술하자!’해서 살아났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지더라고,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각방 쓰는 것을 선호하는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나는 그걸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싶거든.”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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