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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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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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나무들은 아직도 가을이 깊어 가는 줄 모르는지 이제야 조금씩 가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데 어디서 달려왔는지 차갑고도 강한 바람은‘이제부터 여기는 내가 접수하겠다!’라는 듯 사정없이 나무를 흔들며 나뭇잎을 마구 털어내자 지나가는 까치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까부터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오늘도 관주산 정상을 향하여 열심히 걷고 있는데 얼마쯤 걸었을까? 누군가 등 뒤에서 “형님! 오랜만이네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후배가 빙긋이 웃으며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 동생! 정말 오랜만일세! 그런데 요즘은 통 얼굴이 안 보이더니 오늘은 무슨 일인가? 여기를 다 오고.” “무슨 일은 아니고 오늘 새벽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공사 현장에는 가지 못하고 집에 뒹굴뒹굴 있으려니 답답해서‘에라! 산에나 다녀오자!’하고 나왔어요?”
“그랬어? 그런데 요즘 무슨 현장에 다니고 있는데?” “무슨 현장이겠어요? 건물이나 집 짓는 공사판이지! 제가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그래도 건설 현장이라도 다닐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그 현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같이 일하는가?” “현장에 따라 다른데 초대형 회사에서 건물을 짓는 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만 쓰는 곳도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인 근로자도 불법 체류자가 아닌 정식으로 비자가 있는 근로자만 쓰는 회사, 그리고 아주 작고 소소한 현장에는 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 근로자 함께 쓰는 현장도 있고 하여튼 여러 가지거든요.”
“그런데 자네는 건설 현장이 아니고 꼬막, 바지락 양식사업을 하지 않았는가?” “원래는 그랬지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현장 근로자가 되어버렸어요.” “내가 보기에는 그 사업도 괜찮아 보이던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데?”
“그게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옛날 그러니까 약 4~5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저의 집이 우체국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시절은 우체국에 전화교환원들이 근무하면서 전화기 옆에 달린 막대 같은 걸 빙글빙글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고 ‘몇 번 대 주세요!’ 하면 연결해 주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겨울이면 꼬막이, 여름이면 바지락이 어마어마하게 잡혔거든요.
그런데 저의 집에 전화가 없으니 주문을 받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체국 교환원들에게 ‘혹시 우리집에 주문 전화가 오면 직원처럼 받아달라!’ 부탁해서 주문이 오면 알려주어 물건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시절 겨울철이면 어마어마한 양을 잡아내고 또 잡아내도 계속 나왔었고, 또 여름이면 바지락을 그렇게 많이 캐내고는 하였는데 어느날 자동식 전화가 보급되면서 우체국에 전화 교환대가 없어지더니 그때부터 꼬막 생산량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 바지락은 어떻든가?”
“꼬막이 안 좋은데 바지락이라고 좋겠어요? 꼬막처럼 많이 줄어들었는데 폐사 그러니까 죽어버린 꼬막이나 바지락이 많아 어쩌다 보면 인건비도 못 건지는 날도 있으니 자연히 바다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꼬막이나 바지락이 폐사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하던가?” “그게 요즘 말하는 기후와 환경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그것보다 제 생각에는 생활 폐수 같은 것도 한몫하는 것 같거든요.” “생활 폐수는 따로 하수관을 통해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모든 폐수를 다 받아 낼 수 없으니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옛날처럼 그렇게 많은 양의 꼬막이나 바지락을 생산해 낼 수는 없을까?” “그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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