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가득한 시골 들녘길을 천천히 걷는데 산 아래 양지쪽에 자리 잡은 밀밭에는 밀들이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 어렸을 때는 시골 들녘 거의 모든 논에는 보리들로 가득하여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청보리 물결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2모작을 않다 보니 보리밭도 귀하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 두 마리 무엇이 못마땅한지 계속 ‘깍! 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관주산 정상에서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친한 선배에게 “형님! 혹시 누구와 점심 약속 있으세요?” 물었더니 “아니 없어! 그런데 왜?” “약속이 없으시면 저랑 같이 가서 돼지주물럭에 소주 한잔하시게요.” “나는 소주보다 막걸리가 더 좋은데!” “그러면 막걸리로 사 드릴게요.” 하여 일행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일행이 식당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이미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식당을 빠져나오는 것을 본 선배께서 “지금 시간이 12시 2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식사를 마쳤을까?”
“옛날 우리들이 직장에 근무할 때 점심시간은 오전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는데 세월이 변하다 보니 지금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로 시간이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우리 애기들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밥은 먹지 않고 그냥 간단하게 뜨거운 물에 미숫가루 같은 것을 타 먹고 나중에 우유를 먹든가 요구르트를 먹고 말더라고, 지금 한참 젊은이들이 그것을 먹고 아침을 때우니 점심 때까지 기다리려면 배가 얼마나 고플까?”
“그런데 그렇게 먹던 사람들이 아침밥을 제대로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며 안 먹으려고 하더라고요.” “하긴 그럴거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도 식당에서 일하는 여사님들은 손님이 나가버린 상을 치우고 또 새로 상을 차리면서 정신없이 빈 그릇을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선배께서 식당 여사님에게 “지금 치우는 빈 그릇들을 누가 따로 씻는 사람이 있나요?” 묻자 “그릇만 따로 씻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따 점심시간 끝나면 식구들 모두 덤벼들어 씻고 닦고 해야지요.” “그럼 힘드시겠네요.”
“이 세상 모든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이야기가 끝나자 “동생! 자네 혹시 설거지해 본 적 있는가?” 물었다. “글쎄요. 제가 설거지를 해 본 것은 우리 집사람이 어디 나가면서 ‘나 모임 있으니 저녁 밥은 그냥 알아서 차려 자셔!’ 하면 저 혼자 그냥 한술 뜨고 밥그릇은 물로 대충 씻어 엎어 놓은 것이 전부인데 그건 왜 물으세요?”
“내가 며칠 전 모임이 있어 나갔는데 우리 친구들이 ‘너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그러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아니 나는 그런 적 없는데 웬 뜬소문을 듣고 그러냐?’ 했더니 ‘우리 집사람이 그러는데 너는 식사만 끝나면 설거지도 깨끗하게 해 놓고 집안일도 잘 도와준다!’고 그러면서 ‘당신은 뭣하는 사람이냐? 며 막 화를 내고 그랬는데 그래도 아니라고 할 테냐?’
그래서 야! 그것은 우리 집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서 ‘밥 좀 차려 먹어라!’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지 그래도 남자인데 어떻게 여자들이 드나드는 주방을 함부로 들어간다냐? 그랬드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그러면 정말 형님께서 설거지를 하기는 하셨어요?”
“방금도 말했잖은가! 우리 집사람이 병원에 잠깐 다녀올 테니 이따 때 되면 밥 좀 차려 자시라고! 그래서 자네처럼 그냥 밥 먹고 그릇 씻어 놓았는데 그걸 가지고 친구 부인들 만나서 자랑했던 모양이더라고 하여튼 우리 집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쳐주면 안 된다니까!”/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