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농로 길을 천천히 걷다 양지쪽 언덕 위에 마치 포도처럼 송이송이 피어있는 하얀 아카시 꽃을 만났다. 먹거리가 귀했던 1960년대 어린 시절, 배가 고프면 꽃을 한 움큼 따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달착지근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면서 배고픔을 달래주었는데, 지금 우리 손자에게 꽃을 따주며‘먹으라!’ 하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괜히 웃음을 씩~하고 웃어보았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끝내고 일행과 함께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데 선배께서 “요즘 자네 집에는 지네가 안 나타나던가?” 물었다. “저의 집이라고 왜 안 나타나겠어요? 며칠 전 싱크대 밑에서 쇠젓가락 크기의 지네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을 저의 집사람이 발견하고 파리채로 있는 힘껏 내리쳤어도 죽지 않고 도망가는 것을 휴지를 몇 겹으로 싸서 변기통에 넣어 멀리 보내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랬어! 그랬으면 우리 제수씨도 상당히 용감하시네.” “용감해서가 아니고 몇 년 전에는 밤에 잠을 자다 무엇이 배꼽 있는 데를 꽉 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일어나 비상이 걸렸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무엇이 ‘사그락! 사그락!’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커다란 쇠젓가락 크기의 시뻘건 지네 한 마리가 급하게 도망을 가는데 방바닥이 미끄러워 빨리는 달리지 못하는 바람에 파리채로 사정없이 내리쳐 잡았거든요. 그 뒤로 어디서 지네만 보면 기절초풍하는데 요즘은 지네가 있어도 별로 겁을 안 내는 것이 누구 말처럼 많이 용감해져 그런 것 같아요.”
“그런가? 하긴 그런 일이 자주 있으면 별로 놀라지도 않고 처리를 하게 되거든, 그런데 나는 며칠 전 밤에 잠을 자는데 무엇이 귀 뒤쪽으로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래서 살며시 손을 올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머리 부분을 잡아 손가락으로‘꽉’ 누르니 죽은 것 같아 아무 데나 던져놓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성냥 꼴 크기의 지네가 죽어있더라고.” “그러면 물리지는 않았나요?”
“그런데 엊그제 또 귀 옆으로 무엇이 기어다니는 것 같아 왼손으로 잡았는데 처리하기가 불편해서 오른손으로 옮겼는데 그 순간 손가락을 ‘꽉’ 물더라고.” “그러면 가렵지는 않던가요?” “그게 성냥 꼴보다 약간 큰 지네라서 독은 없는지 별로 가렵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새끼라도 지네는 지네인데 전혀 안 가려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옛날에 내가 아주 큰 지네에게 물린 적이 있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런데 물리고 나니 어떻게 표현하기가 곤란한데 가려운 것도 같고 또 아픈 것도 같고 해서 병원에 전화했더니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지네 독이 뱀의 독과 비슷할 수도 있으니 빨리 병원에 오셔서 해독제를 맞는 것이 좋겠다!’해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거든.”
“정말 잘하셨네요. 그런데 지네 독이 정말 뱀독처럼 독성이 강할까요?” “옛날 내가 젊었을 때 감기가 들어 ‘주사라도 맞아야겠다!’하고 동네 의원(醫院)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다리가 퉁퉁 부은 채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냐?’ 물었더니 ‘밭에 일을 하러 가려고 장화를 신었는데 무엇이 따끔해서 벗어보니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나오더라는 거야!’ 그런데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발이 퉁퉁 부어올라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하더라고.”
“그런 것을 보면 지네 독도 그리 만만한 게 아닌 것 같네요.” “매년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 지네가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 여기저기서 물리는 사고가 발생하니 그것도 큰 문제일세!”/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