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順天)에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택시를 타자 “어서 오세요!” 하며 운전기사께서 반긴다. “수고 많으십니다. 버스터미널로 가시게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길이세요?”
“이쪽 아파트에 저의 둘째가 살고 있는데 어제 아들 집에 왔다 오늘 우리 집에 가려고요.” “그러세요. 그런데‘지금 어디 가는 길이세요?’ 묻다 저의 여동생을 살린 일이 있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을 살리셨다고요? 아니 어떻게 살리셨단 말입니까?”
“그걸 전부 다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상관없습니다.” “저의 바로 손아래 여동생이 결혼(結婚)해서 그러니까 여동생의 신랑(新郞)이니 저의 매제(妹弟)가 되지요?” “그렇지요!”
“매제와 함께 남의 집 방 벽을 발라주는 도배(塗褙)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랬어요? 도배하는 일이 힘은 들어도 상당히 괜찮은 직업이라도 하더라고요.”
“그 직업이 선생님 말씀처럼 힘은 들어도 수입은 괜찮은 편인데 문제는 저의 여동생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안 생기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그래서 병원(病院)에 가서 상의도 해보고 하여튼 임신(妊娠)을 하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화투(花鬪)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노름을 했나 보더라고요.” “그랬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노름이라는 게 어디 돈 몇 십 만원 잃고 끝나는 것 입니까? 결국은 집안 살림까지 다 말아먹고 말았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우선 매제까지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저히 미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혼(離婚)을 시켰지요.” “그래도 이혼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그런데 이혼을 하고나니 이번에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책감(自責感)이 있으니 마음이 괴로웠겠지요.”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럴 때 애들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그걸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희망(希望)이 생길 텐데 그런 게 없으니 자꾸 폐인(廢人)이 되어가더라고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음식(飮食)을 먹으면 토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구토를 했다고요?” “그게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꾸 토해서 병원에 갔더니 식도암(食道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수술(手術)은 받으셨나요?” “그럼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수술 후에 약이나 음식을 먹기만 하면 모두 토해버리니 갈수록 사람이 말라가더라고요.”
“정말 걱정되셨겠네요.” “그래서 사실상 포기를 했어요. 약이나 음식을 먹으면 그래도 한 30분 정도는 뱃속에 머물러야 되는데 먹기 바쁘게 다시 토해버리니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나이 지긋하게 보이는 영감님께서 택시에 타시 길래 ‘지금 어디 가는 길이세요?’물었거든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서울의 대학 병원에 가는 길인데 우리 집 사람이 식도암에 걸려 음식이나 약을 먹기만 하면 토했는데 그 대학 교수님께 치료를 받은 후 토하지도 않고 병도 많이 좋아졌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우선 대학병원 교수님 이름과 전화번호를 따 놓고 전화를 했더니 ‘그러면 내가 미리 예약을 해 놓을 테니 빨리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치료는 잘 받으셨나요?” “그랬지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삶의 희망도 생겼거든요. 그래서 항상 손님이 택시에 오르실 때마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세요?’하고 묻습니다./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