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아침 식사를 거른 채 병원으로 향했는데 내 딴에는 일찍 서둘러 온다고 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접수를 하고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살며시 노크하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았더니 중학 동창생 친구가 빙긋이 웃으며 서 있었다.
“아니! 자네 경혁이 아닌가? 정말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인가?” “나도 자네처럼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내 순서가 오려면 자네 보다 훨씬 더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네! 그런데 자네 건강은 어떠신가?”
“아직까지는 특별히 많이 아픈 데는 없는데 이제는 옛날하고 달라서 혈압약을 먹는데 나이를 먹어 그런지 일은 하지 않아도 몸 여기저기 조금씩 아픈 곳이 생기더라고. 그런데 자네 농사는 얼마나 짓는가?” “농사는 조금밖에 안 지어!” “조금이라면 얼마나 되는데?” “약 육천 평쯤 될 거야!”
“아니 육천 평이 얼마 안 되면 많이 지으면 얼마나 지어야 하는데?” “원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지었으나 모든 일을 기계로 하니까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지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힘이 부치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조금씩 농사를 줄이는데 누가 맡아서 지어줄 사람만 있다면 한 삼천 평 정도만 남기고 모두 맡기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어 정말 걱정일세!” “하긴 요즘 시골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걱정일세 그러면 자네 건강은 어떠신가? 농사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할 텐데.”
“나도 자네처럼 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데 재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간장(肝臟)이 안 좋다고 나오더라고.” “그러면 평소에 술은 자주 마시는가?” “아니 나는 술은 안 마시고 담배는 피우는데 그걸 끊어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그게 쉽게 끊어지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피우기로 했네. 그러면 자네는 지금도 술 담배를 하고 있는가?”
“나는 그걸 끊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 “아니 그걸 어떻게 끊었는가? 자네 옛날에는 술도 말술에다 담배도 잘 피웠는데 어떻게 잘 이겨냈던 모양이네?”
“10여 년 전 내가 직장에 근무할 때 건강검진을 받으면 간(肝)이 안 좋네! 혈압이 높네! 하며 자꾸 재검사가 나오더라고 그리고 담당 의사께서 ‘선생님은 술 담배만 끊으시면 건강해 지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될 수만 있으면 그걸 모두 끊어 보십시오.’ 하고 권하더라고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모두 끊어 버렸어! 그랬더니 정말 건강이 좋아지더라고.”
“그랬어!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서 술은 끊었지만 담배는 영 끊을 수가 없더라고, 그런데 자네 우리 동창 성모라고 아는가?” “알지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그 친구가 간경화로 죽었어!” “간경화로 죽었다고? 그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잘 걸린다고 하던데 평소에 많이 마셨을까?”
“성모와 나는 같은 회천면에서 살고는 있지만 같은 마을이 아니다 보니 이따금 만나거든 그런데 그때마다 취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너 조금씩 마셔라! 했는데 그때마다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겠지! 그러던 어느날 죽었다고 연락이 왔어! 그리고 자네 해수라고 아는가?”
“알지 왜 모르겠는가?” “그 친구도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인데 어느날 많이 마시고 과속으로 달리다 가드레일을 들이 받아 현장에서 숨졌어!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서글프든지! 그날도 사람들이 운전을 못하게 그렇게 말렸는데도 끝까지 차를 몰고 나가더라는 거야. 그래서 결국 사고로 이어졌는데 그때는 정말 술이 원수같이 느껴지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