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편지

전광투데이 승인 2023.05.30 17:05 의견 0

길을 걷다 햇볕 잘 드는 길 위 양지쪽에서 예쁘고 고운 소리가 들려 고개를 빼고 살며시 올려다보니 노오란 민들레, 개나리, 수선화가 소담스럽게 피어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들은 언제 찾아와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냐?’생각하니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 준 봄(春)이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온 친구들이 “어서와!”하며 반겨주었다. “오랜만 일세! 그동안 잘들 계셨는가?” “우리는 다 괜찮은데 자네는 어떤가?” “나도 그런대로 건강한 편이야!” “건강하면 그냥 건강해야지‘그런대로 건강하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요즘 들어 내가 자꾸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나면 괜찮은데 그러고 나서 이삼일 지나면 다른 데가 또 아프거든 그래서 한편으로‘내가 큰 병이 오려고 그러는 것인가?’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
“지금 우리 나이가 몇인가? 이제 모두 70줄에 앉은 사람들 아닌가? 지금은 시대가 좋아 우리가 젊은이 행세를 하고 있지만 옛날 같으면 모두 산에 가서 드러누워 있을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몸이 조금 아파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부지런히 치료를 받도록 하세! 그래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그건 친구 말이 맞네!” 하더니 가만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아니 자네는 아직 식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디를 가는가?” “잠깐 볼일이 있으니 금방 다녀올게.”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옆의 친구가 “자네도 눈치가 하나도 없구만, 지금 저 사람이 어디를 가겠는가?” “글쎄 어디 특별히 다녀 올 곳이 있을까?” “이 사람아! 지금 저 사람은 담배 피우러 가는 중이야!” “아니 뭐라고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글쎄 그렇다니까.”
“지난번 만났을 때 그걸 끊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끊는다는 것이 아니고 줄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네는 안 피우는가?” “나는 끊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 “그랬어? 왜 담배를 끊게 되었는데?” “그때는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 2년 만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가?
그런데 자꾸‘간(肝)이 나쁘다 어디가 나쁘니 재검(再檢)을 받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술 담배만 끊어도 이렇게 재검 받을 일이 없을 텐데 뭣 하러 담배는 피우고 술은 마시는 걸까?’생각하다 어느 날‘에라 모르겠다! 오늘부터 당장 금연 그리고 금주를 시작하자!’하고서는 그날부터 끊었는데 그러고 나니 마음속에 부담이 없어져서 좋더라고.” “마음속에 부담이라면 그게 어떤 건데?”
“그러니까 장시간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차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괜스레 초조해지고 짜증이 나고 그러는데 담배를 끊은 뒤부터 그런 증상이 사라져서 좋고 또 화장실에서 그걸 피우면 아무리 환기를 잘 시킨다고 해도 냄새가 절여있는데 그런 게 없어지니 일거양득 아닌가?
“자네 말을 들어보니 담배는 정말 백해무익한 것인데 그걸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정말 쉽게 끊을 수가 없는 게 문제 아닌가? 그런데 자네는 언제 끊었는가?”
“나도 일 년이 넘었어!” “왜 그걸 끊었는데?” “우리 손녀가 편지를 보냈더라고.” “무슨 편지를 보냈는데?” “사랑하는 할아버지 건강을 위하여 담배를 끊으시면 정말 좋겠네요. 하고 편지를 보냈는데 그걸 받고 명색이 할아버지 되는 내가 어떻게 끊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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