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계묘년(癸卯年)의 추억

전광투데이 승인 2023.06.04 18:40 의견 0

모처럼 기다렸던 비가 오려는지 오후로 접어들자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밤 7시쯤 되자 갑자기 소나기 쏟아지듯‘우~루~루~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기왕 내리기 시작한 비 충분히 내렸으면 좋겠다.’생각을 해 보았지만 아침이 되자 그쳐버리고 말았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후배가 “형님 올해가 무슨 띠인가요?”물었다.
“작년이 임인년(壬寅年) 호랑이띠이니 금년에는 계묘년(癸卯年) 토끼띠인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가?”선배께서 대답하자 “금년이 호랑이해인지 토끼해인지 헷갈려서요.”하며 빙긋이 웃는다. “그런가? 그런데 요즘 날씨가 매우 가물어서 야단인데 60년 전에도 올해와 똑같은 계묘년 토끼해였거든, 그런데 그때는 정말 살기 힘들었어!”
“왜 그렇게 살기가 힘들었을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60년 전이면 1963년도 아닌가?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기와집이나 슬래브 또는 아파트는 없고 거의 초가집이었거든, 그러면 가을에 농사일이 모두 끝나고 농한기(農閑期)가 찾아오면 남자들은 논에서 거둬들인 짚으로 마람(이엉)을 엮기 시작해!”
“그러면 형님 댁에도 초가집이었나요?” “그 시절에는 웬만한 부자 아니면 거의 초가집이었거든 그러니 농한기가 되면 짚을 이용해서 마람을 엮는데 그것도 기술이 필요해! 특히 지붕 맨 위로 올라가는 용마람(용마름)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는데 우리 아버지께서 그걸 잘하셨던 모양이야.”
“그러면 용마람을 잘 엮는 기술자들은 따로 돈을 주고 부르기도 했겠네요.” “그랬지! 그런데 그때가 1월인가? 2월인가? 하여튼 집에 쓸 마람을 다 엮은 아버지께서 ‘너 이모 집에 가서 대(竹) 몇 개 베어오너라!’심부름을 시키시더라고.” “그러면 이모님 댁이 멀리 있나요?”
“아니 우리 집에서 약 8km 쯤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시는데 그 시절만 하더라도 지붕에 이엉을 엮어 덮으면 마지막 끝부분을 대(竹)를 대고 새끼를 묶어 마감하는데 거기에 쓸 것도 돈을 주고 사야하니까 나 보고 이모님 댁에 다녀오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겠는가? 다녀와야지! 그리도 또 거기가면 이모께서 오죽 잘 해주시겠는가? 하여튼 이모님 댁에 갔더니 이모부께서 아주 곧게 잘 자란 긴 장대 대여섯 개를 새끼로 단단하게 묶어 우리 집 거의 가까이까지 끌고 오시더니 ‘이제는 힘들지만 네가 끌고 가거라!’해서 그걸 넘겨받아 집까지 끌고 오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나중에 보니 대의 한 매듭(약 20cm)이 거의 닳았더라고.” “그랬으면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그런데 그런 일은 그냥 잊혀 지나가는데 그해 봄에 보리를 베어 말리기 위해 논둑에 차근차근 눕혀 쌓아 두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장마가 시작된 거야.” “그러면 장마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할 수 없었나요?”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TV는 물론이고 라디오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세상이니 장마가 들지 어떨지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보리가 비를 맞았는데 하루나 햇볕이 나면 그걸 뒤집어 놓으면 또다시 비가 와서 보리에 싹이 나버려!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시절 17살 어린 나도 막막했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면 끼니 때우기도 힘들었겠네요?” “그때만 하더라도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이니 겨울에는 쌀밥만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만 먹었는데 여름 식량 보리가 장마 때문에 모두 밭에서 썩어버렸으니 얼마나 살아갈 길이 막막했겠는가? 그래도 그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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