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꿀벌이 주는 교훈

전광투데이 승인 2024.04.28 16:53 의견 0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2022년 10월에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사전 교육에 소홀해지고 있음을 사고가 난 후에야 후회한다. 인간은 갑작스러운 어려움에 당했을 때 좀 더 침착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 한데서 대형 사고가 나게 되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짐승들도 어떤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으면 우선 혼자 살기를 바라고 이성을 잃은 데서 사고를 낸다. 어느 날 닭장 속에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들어가면 닭들은 놀라 서로 도망치려고 출구로 밀리다 수백 마리의 닭장 닭들이 압사(壓死)한다. 한 마리의 수리부엉이를 대항해 공격할 생각은 못 하고 우선 혼자만 살려고 도망가다 사고를 낸다.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은 병아리를 살리려 대항하며 싸우겠지만, 닭장 속의 수많은 닭의 생각은 다르다.
수리부엉이는 닭 한 마리를 손쉽게 낚아채 닭장 귀퉁이에서 여유롭게 뜯어 먹는다.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수많은 닭을 죽인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수리부엉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닭들이 서로 먼저 살겠다고 출구 쪽으로 달려가다 압사당한 것이다. 수리부엉이는 한 마리 닭을 죽였고 나머지 닭은 닭들이 서로 죽인 것이다. 인간의 대형 사고도 순간적인 생각을 못 하는 것은 짐승과 비슷하다.
그러나 모듬살이를 하는 꿀벌은 벌통 속에 꿀벌보다 대개 5~6배 정도 덩치가 큰 침략자 말벌이 들어오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물려 죽으면서도 달려들어 말벌을 에워싸서 온도를 48도까지 올려 말벌을 죽여 버린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일벌들도 많지만, 침략자를 물리치고 날게 짓을 하여 온도를 정상으로 만든다. 온도가 48도가 되면 자신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처했을 때 '혼자 살려는 자는 죽고 목숨을 바쳐 싸운 자는 산다'는 교훈을 꿀벌들은 인간에게 시사 한다.
꿀벌은 꿀을 절대로 혼자 먹지 않는다. 밖에 나갔다가 꿀을 발견하면 벌집에 돌아와서 동료들 앞에서 춤부터 춘다. 그런데 이 춤은 사실 벌의 소통(疏通) 수단이다. 그 벌은 동료 벌들에게 꿀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꿀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날갯짓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꿀벌들이 어떤 방향으로 몇 마리를 파견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꿀벌들은 다 같이 협력해서 꿀을 모아온다. 그런 다음 함께 저장하고 함께 꿀을 나누어 먹는다.
꿀벌들은 닭들과 확연히 다른 DNA를 가진 것 같다. 닭들은 천적인 수리부엉이의 공격에서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동료 닭도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공멸(共滅)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꿀벌들은 자기 한 몸 희생을 각오한 결과 천적인 말벌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나 죽고 우리 살자' 식으로 생존 해가는 것이다. 닭들은 모든 것을 '제로섬 게임'으로 사고 한다. 그래서 '닭 대가리'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꿀벌들은 자기의 행동을 '상생'하는 관점에서 조율한다. 닭들은 개죽음당하지만, 벌들에게는 명분 있는 희생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상호 협력할 줄 아는 'non-제로섬 게임’의 사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다. 한 번 사냥감을 정하면 가장 빠르게는 아니지만, 끝까지 추적(追跡)해서 잡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같이 협동해서 잡는다. 인간의 언어도 사실은 사냥터에서 사냥하기 위한 소통의 목적으로 나온 것이라 한다.
우수한 집단에 가장 낮은 자세로 조직을 운영하는 서번트 리더십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강한 조직과 약한 조직의 차이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자신의 희생적 자세로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 꿀벌은 꿀을 절대로 혼자 먹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의 몸을 던지기 때문에 천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정기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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