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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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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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조각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가고 누구네 집 담 너머 대추들은 진작부터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는데 아직도 무더위는 물러갈 생각이 전혀 없는지 조금만 걸어도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예년 같으면 벌써부터‘가을이 시작되었다!’ 야단일 텐데 금년에는 왜 이렇게 무더위가 끝나지 않은 것일까? 혹시 누가 고사라도 잘못 지낸 것일까?” 괜한 생각을 해보며 혼자 한 번‘씩!’ 웃어 보았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산을 내려오는데 누구네 집 산소에 자손들이 예초기를 이용하여 벌초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배께서 “저 사람들은 오늘 벌초 끝나면 두 다리 쭉 펴고 편하게 잠잘 수 있을 거야!” 하셔서 “그러면 벌초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은 두 다리를 오그리고 잔답니까?”
“이 사람아! 그만큼 벌초가 머리 아프다는 이야기야!” “물론 그러겠지요. 그런데 벌초는 너무 빨리해버리면 풀이 또 자라나서 두 번 세 번까지 할 수 있으니 시기를 잘 맞춰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겠더라고요.”
“그게 집에 예초기가 있는 사람 같으면 틈나는 대로 가서 한다고 하지만 기계가 없거나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천상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또 돈이 들어가니까 그게 문제더라고. 내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형제들이 모두 모여 조상님 산소 벌초를 했는데 그게 재작년 다르고 작년 다르더라고.” “무엇이 다르던가요?”
“우리는 사촌 형제들은 물론이고 조카들까지 모두 동원해서 하는 데 갈수록 힘이 더 들더라고, 그리고 예초기 같은 기계는 조카들이 젊으니까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힘든 일이 젊은 사람이 하면 힘이 안 들겠는가?
그래도 처음에는 ‘우리가 힘이 들더라도 그래도 우리 조상님 산소니까 우리 힘으로 하는 데 까지 해 보고 정 힘들면 맡기도록 하자!’ 의견이 모아졌는데 작년에는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내년부터 업체에 맡겨서 벌초를 하자!’고 젊은 조카들이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그럼 그렇게 하자!’하고 며칠 전 산소 벌초를 맡겼는데 봉이 우리 부모님과 조부, 조모님, 그리고 작은아버지 어머니 또 먼저 가신 사촌 형님, 동생들까지 모두 13봉이다 보니 한 봉에 5만 원씩 전부 65만 원을 달라고 하더라고.”
“벌초하는데 65만 원이면 작은 돈이 아닌데 조금 깎아보지 그러셨어요?” “그런데 원래 한 봉에 7만 원씩인데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어 그래도 시간이 덜 드는 작업이니 싸게 해서 받았다는데 어떻게 더 깎을 수 없더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산소 옆에 녹차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며느리 밑 씻게’라는 풀이 온통 나무를 뒤덮고 있더라고 그래서 예초기로 그걸 치면서 걷어내려 했더니 안되어서 한 손으로 그걸 잡고 힘껏 당겼더니 끌려오면서 녹차 나무 감고 있던 줄기까지 딸려 오는데 그게 무엇이 잘못되었던지 한쪽 팔이 긁히면서 피가 나고 가렵더라고.”
“그러면 예초기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당기시지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게 한 손으로 해도 될 것 같아 그랬지 그렇게 사정없이 붙잡고 있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조카들이 그런 일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래서 ‘이제 고생 그만하고 맡겨서 하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 않겠는가?”/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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