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멸구 이야기

전광투데이 승인 2024.11.17 18:15 의견 0

흐르는 물처럼 세월이 흘러 어느덧 9월 중순으로 접어들었으나 하늘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폭염을 쏟아부으며 지금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릴 정도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 누구네 집 담을 넘어온 호박 넝쿨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호박 하나를 매달고 바로 옆에 서있는 높은 나무를 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어 “너 그렇게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무엇하려고 그러냐?”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늘은 가까운 산에 다녀오자!’며 일행들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이 차를 달려 미력면을 지나가는데 들녘에 농부들이 점차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는 벼 논에 약 같은 것을 뿌리고 있었는데 가끔 쓰러진 벼들이 여기저기 눈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선배께서 “아니 저게 무언가? 요즘 벼멸구가 있는 것일까?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며 안타까운 표정인데. 계속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자세히 바라보니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 중간중간에 마치 어린 시절 머리에 부스럼이 나면서 머리가 원형으로 빠진 것처럼 벼들이 주저앉아 있어 벼멸구가 많이 확산된 느낌이었다.
“형님! 벼멸구는 어디서 무리 지어 날아올까요?” “그게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옛날 내가 농사지을 때는 거의 매일 논을 둘러보러 나가는 데 논에 가면 물은 얼마나 있는가? 벼잎에 혹시 병충해는 없는가? 살펴보고 혹시 무슨 징조가 있으면 빨리 약을 치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금방 논 전체로 번지거든.” “그러면 그때도 지금처럼 벼멸구 피해가 많았나요?”“그때는 그것뿐만 아니라 도열병, 문고병, 흰잎마름병, 등 우리가 다 외우기도 힘든 병들이 있어 피해도 많았는데, 그중에서 특히 벼멸구는 처음 발견했을 때 바로 약을 치지 않으면 삽시간에 논 전체로 번져 벼의 즙을 빨아 먹는 바람에 썩은 것처럼 주저앉아 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수확하여 방아를 찧어도 쌀이 다 부서져 싸라기가 되기 때문에 밥을 해도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어!”
“그러면 방제는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농약을 치면 잘 듣는 것이 아니고 몇 번씩 쳐야 깨어나는데 약 냄새도 굉장히 독해서 여기서 약을 치면 십 리 밖에서까지 냄새를 맡을 정도로 독했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보니 우리 논에서도 벼멸구가 보이더라고, 그래서 빨리 약을 구해서 쳤는데 잘 안 들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런데 약이 잘 안 듣고 그러면 자동차 정비공장에 가서 엔진오일 폐유(廢油)를 얻어와.” “폐유는 어디에 쓰시게요?” “폐유에 모래를 섞어 논에 뿌려놓고 잠시 기다린 다음 물을 방방하게 채우고 조그만 접시 같은 걸로 논물을 벼 줄기에 마구 뿌리면 벼멸구들이 기름에 섞여 물로 떨어지는데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못하니까 가족들이 전부 동원되는데 그게 보통 힘 드는 게 아니거든.”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런데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이 왜 그렇게 그 시절에는 벼에 병충해가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더라고. 하여튼 자고 나면 자꾸 병이 생기는데 지금처럼 자동 분무기라든가 기계를 이용하여 농약을 할 수 있던 시기가 아니니 수동분무기에 약을 타서 등에 지고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논에 약을 뿌리고 나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고 몸살이 날 지경이었는데 그렇게 추수할 때까지 많이 한 사람은 열세 번까지도 약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지금은 몇 번이나 할까요?”
“지금은 약 효능이 좋아 병해충이 발생하면 바로 약을 뿌리는데 ‘한 번만 해도 된다!’고 하고 또 약을 한 번도 치지 않고 1년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다하더라고.”/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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