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밤

전광투데이 승인 2024.11.24 17:50 의견 0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내 곁에 다가와 귀에 대고 “아저씨 가을이 왔어요!” 속삭이기에 “정말?”하며 논둑길 밭둑길 풀숲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분명히 가을이 왔다!’ 했는데 하며 위를 쳐다보았더니 흰 구름 한 조각 두둥실 떠가는 푸르고 예쁜 가을하늘이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
아! 진작부터 가을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구나!’ 하며 새삼 아무도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가을이 고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은 매월 한 번씩 있는 정기 산행 일이어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모인 다음 산을 향해 출발하였고 일행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후배에게 “요즘 시골에는 벼멸구 때문에 야단인데 자네는 피해 없는가?”
“왜 저라고 없겠어요? 그런데 그게 예고를 하고 찾아와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어서 날마다 논에 가서 이상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바쁜 시간에 어떻게 매일 논에 나갈 수 있겠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모든 논이 다 피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논은 군데군데 먹어버리고, 어떤 논은 하나도 먹지 않고 또 어떤 논은 거의 다 먹어버린 논도 있던데 그건 왜 그럴까?”
“그게요, ‘엿장수 맘대로’라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이 논으로 가거라! 저 논으로 가거라!’하는 것이 아니어서 순전히 벼멸구 맘대로 돌아다니며 먹어 버리는 데 아침에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방제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빨리 가서 약 준비하고 기계 준비해서 뿌리는데 요즘은 날씨 때문인지 약도 잘 듣지 않더라고요.” “그게 약이 잘 듣지 않으면 정말 힘들겠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쉼터에 도착하자 “여기 굉장히 달디단 포도가 있습니다.
어서 드셔보세요.” “저는 돼지머리 고기를 싸 왔습니다. 여기 깻잎과 된장이 있으니 한 입씩 싸서 드셔보세요.”
“저는 맛있는 옥수수를 싸 왔는데 한 개씩 나눠드리겠습니다.” 하며 회원 자신이 준비해 온 간식을 내놓기 시작하자. 여성회원 한 분이 “여기 한 번 맛을 보면 절대 잊지 못할 아주 맛있는 밤을 싸 왔는데 기막힌 사연이 있는 밤이니 어서 드셔 보세요.” 하기에 “기막힌 사연이라면 어떤 사연이 있는데요?”
“그게 오늘 산행할 때 어떤 간식을 싸갈까? 생각해 보았는데 마침 저의 큰댁에 밤나무가 많거든요. 그래서 엊그제 아침 일찍 일어나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옷을 단단히 입고 모자를 쓴 다음 수건으로 목을 두르고 장화를 신고 밤 밭으로 향했거든요. 그리고 밤을 줍기 시작하는데 아시다시피 밤 농장에는 풀이 말도 못하게 자라나 있는 데다 옛날에는 산림조합에 신청을 하면 병충해가 없도록 항공방제를 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꿀벌들이 집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해롭다고 못하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풀숲을 나무로 휘저어가며 밤을 줍는데 어딘가를 ‘탁!’ 때리는 순간 ‘위~윙!’ 소리와 함께 말벌들이 수대로 내게로 달려들더니 여기저기를 마구 쏘아대더라고요.”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도망을 가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아픈 것보다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 싶어 마구 달리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뒤를 돌아보니 벌들이 더 이상 안 쫓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우선 벌에 쏘인 자리를 세어보니 6곳인데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병원에는 가봐야겠다.’ 싶어 갔더니 원장님께서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오셨어요? 원래 사람이 말벌에 쏘이면 아프면서 가렵기 때문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벌을 안 타시나 봅니다.’하며 주사만 한 대 놔주더라고요.”/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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