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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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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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찾아오면서 시골 마을 뒤쪽 야트막한 야산 너머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 한 조각 두둥실 떠가고, 들녘의 벼들은 매일 조금씩 더 누레지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니 괜스레 이제 막 예쁘게 피어난 물봉선 아가씨에게 다가가 자꾸만 치근거리고 있었다.
“너 아무리 그래봐야 받아 줄리 없으니 빨리 포기해라!” 하였더니 잠자리는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새로 지은 아파트 아래쪽 길을 지나고 있는데 길 한쪽에 경찰차가 세워져 있고 경찰관 두 분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쩌그 가로등 안 있소? 근디 저것 땀새 우리 밭에 들깨가 통 꽃도 안 피고 여물도 들도 안 하고 그랑께 저 등 스위치를 내리든지 다마를 빼든지 불을 잔 못 오게 해 주씨요.
내가 불을 꺼불라고 암만 봐도 으디가 스위치가 있는지 못 찾 것 드랑께!”“할머니 그런데 저 가로등 때문에 들깨가 꽃도 못 피고 또 열매도 맺지 못하다는 무슨 과학적인 근거라도 있을까요?” “아니 나이 묵은 사람이 가로등 땜새 들깨가 꽃을 못 피운다문 그란지 알제 먼 말이 그라고 만하요?”
“할머니께서는 물론 가로등 때문에 손해를 보실 수도 있지만 그러나 저건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를 지나다니는 사람 누구나 밤길에 안전하라! 고 달아놓은 것인데 할머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걸 뜯어내라 뽑아내라 하시면 되겠습니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엊그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며칠 전 내가 소속된 산악회에서 전북 장수군에 위치한 장안산 산행을 하였는데 그날은 매일 계속해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폭염이 끝나고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산행하기 아주 아주 좋은 날씨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장안산 중간쯤 위치한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로 하자 일행들이 배낭 속에서 간식거리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며칠 전 내가 말벌에서 쏘이기까지 하면서 주워 온 밤인데 아주 맛있을 겁니다. 한 개씩 드셔보세요.” 또 다른 회원은 “저는 사과와 배 그리고 포도를 가지고 왔어요. 어서 드셔 보세요.” 하자 옆에 있는 친구가 배낭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내놓더니 “저는 돼야지 머리 고기를 싸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초장과 된장 고추도 있습니다. 또 이걸 그냥 드시기 뭣 하시면 들깻잎도 있으니 함께 싸서 드시면 아주 좋습니다.” 하자 옆의 회원께서 “아니 그 맛있는 것을 내비두지 마시라니까 뭣 하러 여기까지 싸 오고 그러십니까? 미안스럽게! 다음부터는 절대 싸 가지고 오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농담에 모두들 “허! 허! 허!” 한바탕 웃으며 들깻잎에 머리 고기를 싸서 맛있게 한 입하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요즘 들깻잎이 열매 맺느라 누렇게 뜨기도 하면서 그렇게 예쁘지 않던데 자네가 싸 온 들깻잎은 그런 게 하나 없이 싱싱한 게 아주 좋네!”
“그건 나만의 비법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무슨 비법인데?” “비법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것은 아니고 우리 집 텃밭 위에 가로등이 있어서 밤만 되면 불이 켜지는데 들깨는 밤에 불이 켜지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밤에 잠을 못 잔다면 열매도 맺기 어려울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우리 들깨는 열매 맺기 위함이 아니고 그냥 쌈 싸 먹는 용도로 가꾸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않아도 상관없거든 그래서 이렇게 싱싱한 들깻잎을 먹을 수 있는 거야!” 하였는데 할머니와 경찰관들이 가로등 때문에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쪽으로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유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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