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가져가지 마세요!’

전광투데이 승인 2024.12.08 16:35 의견 0

가을로 접어들면서 매일 아침 앞이 보이지 않은 정도의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밝은 햇살에게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 버리는데, 이른 아침부터 새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너무 무더운 날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정말 좋구나!” 생각하니 뒤늦게 찾아온 가을이 고맙게 느껴지고 있었다. 관주산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여사님 한 분이 대 빗자루를 이용하여 등산로를 깨끗이 쓸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가 많으시네요.” 인사를 건네자 “안녕하세요? 그런데 뭐 좀 한 가지 물어볼게요.” “무엇이 궁금하신데요?” 하자 들고 있는 빗자루를 가르치며 “이게 분명 댓가지로 만든 빗자루가 맞나요?”“이건 대 빗자루가 맞는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이게 바닥을 쓸면 잘 안 쓸어질 뿐 아니라 또 힘도 없어서요.” “그게 가운데를 끈으로 한 번 더 묶어야 하는데 위쪽만 묶어 놓으니까. 댓가지가 바닥에 닿으면 무게 중심이 위쪽으로 쏠리면서 힘이 없어 잘 안 쓸어지거든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끈으로 중간을 한 번 더 묶으면 되는데 지금은 적당한 게 없으니 내일 제가 가져다 묶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엊그제만 해도 빗자루가 두 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요즘 요소요소에 놓아두셨던데 새로 또 구입하신 겁니까?” “예! 그게 여기 매일 다니는 언니들과 돈을 만 원씩 걷어서 사다 놓았어요.” “그럼 한 개에 얼마씩이나 하던가요?”
“만원에 두 개 주던데요.” “그래요? 옛날 제가 사러 갔을 때는 만원에 다섯 자루를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다음에 갔을 때는 네 자루를 주더니 그다음에는 세 자루 그러더니 드디어 두 자루로 가격이 많이 올랐네요.”
“어머! 그랬나요? 하긴 다른 물가도 많이 오르는데 빗자루 가격이라고 안 오르겠어요?” “그러면 작년 가을에 쓰셨던 빗자루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발이 시려워 맨발로 다닐 수가 없게 되자 등산로 청소를 통 하지 않았는데 어느날부터 한 자루 두 자루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몽당빗자루 빼고는 한 자루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빗자루를 모아서 어디에 보관하신 것이 아니고요?” “그걸 가져다 어디에 두겠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그냥 두었는데 어느 날 부턴가 그게 한 개 두 개 없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심술부리는 줄 알고 주위를 찾아보았더니 두 개는 멀리 던져버렸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았는데 다른 것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아마도 누군가 집으로 가져간 것 같아요!” “그러면 남의 빗자루를 가져다 마당을 쓸면 복이 들어올까요?
왜 사람들이 그리 비싼 것도 아닌데 욕심을 내고 가져갔을까요?” “그러니까요! 그게 그렇게 많이 비싼 것 같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소소한 것을 다 욕심을 내니 참! 마음이 씁쓸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투명 테이프를 이중으로 겹쳐서 여기에 ‘제발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써서 붙여 놓았어요.”
“제 생각에는 여사님의 정성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가져가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청소하고 맨발로 다니면 몸에 무슨 좋은 효과가 있는 것 같던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밤이면 잠이 잘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저뿐만 아니고 다른 언니들도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 “그래요! 사람이 밤이면 잠을 못 이루는 것도 큰일인데 잠이 잘 든다면 그것 한가지로도 고생하신 보람은 충분히 있는 거네요.”/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저작권자 ⓒ 전광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