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노동우체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반가운 얼굴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형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래 동생 잘 지내셨는가? 몸은 건강하시고?” “저는 아직 어디가 특별히 많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으니 건강한 편이겠지요?”
“그렇다면 다행일세!” “그러면 형님은 어떠세요?” “나도 자네처럼 그렇게 어디가 많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데 이제는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취하는 것 같아 끊어버렸거든 아마 그것도 힘으로 마시는 것 같아.” “형님 나이가 있으신데 옛날처럼 마실 수 있다면 젊은 사람이지 나이 먹은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그러게 말일세 옛날 우리가 함께 근무했던 시절에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았는데 이제 좋은 시절은 모두 다 가버린 것 같네!”
“그러니까요. 어찌 그리 세월은 잘 가는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끝나고 옆의 후배에게 “동생은 노동 우편취급소장을 하신다면서?” “예! 그렇게 되었어요?” “노동 우편취급소 우편물 접수가 하루에 얼마나 되든가?”
“몇 개 안 돼요! 일반 우편물 즉 편지는 거의 없는 편인데 가끔 교회나 사찰에서 무슨 안내문 같은 걸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빼고는 없어요. 그리고 택배의 경우 노동면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다 보니 우리가 직접 가정을 돌아다니며 접수해야 하는데 사무실에는 저 혼자 근무하는데 비워놓고 돌아다닐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택배 접수 물량도 몇 개 되지 않고 또 등기 우편물도 면사무소에서 발송하지 않으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우체국에서 취급소로 바뀌어 버렸어요.”
“옛날 우리가 함께 근무했던 시절만 하더라도 국장님과 사무실 직원이 세 명 그리고 우편집배원이 세 명 그리고 전화 교환원이 일곱 명 해서 모두 13명이 좁은 사무실에서 그래도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는데, 그 시절에는 비록 조그만 면소재지라고 해도 다방도 있었고 또 식당이 네 곳에 면사무소와 파출소, 농업기술센터 농협 같은 기관들도 있어 사람 사는 곳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인구가 줄면서 면사무소와 농협을 제외한 모든 기관들은 통폐 합 되면서 사라져 버렸고 그래도 우체국은 남았다고 했는데 그나마 취급소가 되어버렸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 일세! 그런데 지금 식당은 한 군데라도 있는가?”
“한군데 있기는 한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요.” “그건 왜 그런데?” “그게 평소에는 거의 손님이 없기 때문에 문을 닫아놓고 있다 예약 손님이 있으면 문을 열거든요. 그런데다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면 자신이 살던 집을 팔지 않고 떠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농촌에 빈집은 늘어나지만 사람들이 와서 살집은 마땅치 않아 귀촌할 사람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그나마 다른 곳으로 가더라고요.”
“그게 시골집 팔아봐야 얼마나 받을 것인가? 몇 푼 되지 않은 돈 받아봐야 금방 없어지고 결국 집만 없어지는 셈이니 대부분 팔지 않고 떠나면서‘여기는 내가 태어난 곳이니 내가 늙으면 여기에 아담한 집을 지어 나중에 다시 돌아와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요. 그런데 다 또 면소재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역이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카페라든가 새로운 식당은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정말 우연히 찾아온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장소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더라고요.”/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