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성이나 결혼에 관심이 없어 일찌감치‘나 혼자 살겠다!’는 자녀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마음에 드는 결혼 상대자를 데리고 왔으나 ‘집안이 어쩌네! 학력이 어쩌네! 또 잘 생겼네! 못생겼네!’ 이유로 결혼에 반대하여 끝까지 자녀들이 결혼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은근히 있는 것 같던데 실제로 우리 건너편 마을에 사는 박씨 영감은 어느날 딸이 결혼 상대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바로 승낙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영감님이 조금 고지식한 면이 있어 ‘어디서 이런 사람을 데리고 왔냐?’며 마구 야단을 치면서 딸에게 손찌검까지 하려고 했던 모양이더라고.” “그것 참! 왜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말일세! 아마 그 영감은 그게 자신이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딸을 막 때리려는 순간 청년이 벌떡 일어나며 하는 말이 ‘저 여기 그런 대접 받으려고 온 사람 아닙니다. 제가 싫다면 가겠습니다. 그러니 영순씨를 때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더라는 거야!”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 파혼(破婚)이지 그 뒤로 아가씨에게 여기저기 선을 보라고 하였지만 무조건 퇴짜 놓으며 ‘결혼!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고 하더라는 거야.”
“참! 그대로 두었으면 아들딸 낳고 잘 살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였을까요?”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또 약혼까지 해 놓고 파혼한 경우도 있더라고. 우리 처가 동네에 김씨 영감님은 젊었을 때 아주 가난하게 살았지만 두 분이 부지런해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신 분이거든, 그런데 그 어려운 살림에도 딸 다섯을 다 결혼시키고 나머지 아들 하나만 남았는데 어느날 아들이 결혼 상대자라며 아주 예쁘고 얌전한 아가씨를 데리고 왔더라네.”
“그러면 부모님은 마음에 들어 하셨다던가요?” “물론 마음에 들었으니 약혼까지 했겠지, 그래서 부모님 금반지에 옷도 한 벌씩 맞추고 ‘아주 살판이 났다!’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어! 그런데 어느날부터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거야.” “왜 그랬을까요?”
“누나들이 아가씨 뒷조사를 해보니 집안이 아주 가난해서 안 되겠더라는 거야. 그래서 ‘헤어져라! 저 따위 가난한 집에 장가들면 평생 그 집 뒷바라지만 하다 끝나니 헤어져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부모까지 가세해서 헤어질 것을 강요하니 결국은 아들이 아가씨에게 ‘내가 너와 결혼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부모님과 가족이 저렇게 반대하니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 부모님과 함께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너를 구박할 수 있을 텐데 그걸 또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너를 위한 길이 아니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 서로 헤어지자!’고 하고 결국 헤어졌는데 그 뒤 아들을 결혼시키려고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남자가 마음에 들면 여자가,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남자가, 퇴짜를 놓고 또 서로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여자 측에서 뒷조사를 해보고 ‘옛날에 가난한 딸이라고 퇴짜 놓은 집과 혼인을 할 수 없다!’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하다 보니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자꾸만 흘러가는 거야! 그 뒤로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여자와 헤어진 뒤 어디를 다녀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다 먼 발치에서 옛날에 사랑했던 그 여자를 보았는데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가더라는 거야. ‘만약 그때 부모님만 반대하지 않았다면!’ 하였지만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