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읍 5일 시장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초등학교 동창생이 빙그레 웃으며 “야! 너 왜 그리 오랜만이냐? 그동안 잘 살았냐? 으디 아픈디는 읍냐?” 하며 안부를 물었다.
“너도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 “나는 매일 집에서 노느라 바쁘니까 그렇지 그런데 너는 요즘 무엇하고 지내냐?” “나는 너처럼 집에서 놀지 않고 산에서 노느라 바쁘다!” “그러냐? 그란디 놀더라도 아프지 말고 놀아라! 알았지?”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 아프기 싫어 죽것는디도 몸이 아퍼불문 으짜꺼이냐?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이야기를 나누다 옆에 선배님을 보더니 “아니고! 형님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나는 항상 잘 있어! 그란디 자네는 으짠까? 목소리를 들어본께 옛날하고 똑같이 쩌렁쩌렁한디 으째 얼굴은 만이 쭈굴쭈굴해져 분 것 같네!” “그래요? 그란디 요새 우리 딸이 아부지 주름살 펴지라고 자꼬 얼굴을 다리미로 다려싼께 그래도 옛날 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그란가? 그란다문 다행이고.” 이야기가 끝나자 나를 보고 “야! 너 우리 형님 모시고 댕김서 잘 챙겨드려라 알았지!” “니가 부탁 안 해도 내가 잘 모시고 잘 챙겨드리고 있다! 그란디 어째 형님하고 같이 댕긴께 배 아프냐?” “아니 배까지 아프지는 않은디 나도 옛날같이 느그 동네서 같이 살아야 된디 이쪽으로 이사를 해분께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야! 그래 그라문 가그라!” 하고 돌아서서 자신의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을 보던 선배께서 “방금 저 동생이 자네하고 동창이라 그랬제?”
“초등학교 동창이지요.” “그런데 저 사람의 나이는 자네보다 한 살 더 많을 거야.”“그래요? 그러면 방금 그 친구는 학교를 1년 늦게 갔을까요?”
“아마 그랬을 거야. 왜 그러냐 하면 방금 그 동생 위로 형들도 있고 누나도 있는데 없는 집에서 학교를 다 보낼 수는 없으니까 1년이나 2년씩 늦게 보낸 집도 있었거든. 실제로 우리집 아래에 살던 내 친구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학교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거든, 그러다 내 동생이 학교에 입학한다고 우리 어머니 손을 잡고 가니까 대문 밖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막 울더라는 거야
,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친구 어머니께 ‘왜 애기들을 학교에 안 보내냐? 부모들은 무식하드라도 자식들은 무식 면을 해야 되꺼 아니냐?’하시면서‘아가! 나랑 학교에 가자!’하고 우리 어머니께서 학교에 입학을 시키셨거든, 그러다 보니 나이는 나하고 동갑인데 학교는 2년 후배거든. 그랬는데 만약 그때 그 친구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평생 글씨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으로 살았을 게 아닌가?”
“그런 일도 있었네요. 그런데 옛날에 살았던 저의 마을에서 저보다 2년 후배가 저보고 ‘형’이라 부르며 따랐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덩치가 아주 작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보다 두 살이나 더 먹어서 졸지에 형에서 동생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 부모님이 그 친구의 덩치가 너무 작다 보니 도저히 학교에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날 군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어요. 그래서 나는 아직 신체검사도 받기 전이어서 ‘너 자원입대했냐?’ 물었더니 ‘만 20세 정식으로 입대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그 시절에는 가정 형편 또 덩치가 너무 작아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 나이에 학교를 보내지 못했던 일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