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큰 추위는 없을 것 같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적중했는지 햇볕 잘 드는 양지쪽에는 마치 포근한 봄이 찾아온 것처럼 따스함이 가득한데, 아직도 밤에는 동장군이 찾아와 건너편 집 지붕 위에 하얀 그림을 그리며 놀다 사라지고, 까치들은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이사하였는지 몇 마리씩 모여‘까~악~깍!’ 소리를 지르던 시골 들녘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오늘은 선후배 간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시간이 늦지 않도록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며 후배가 반겨주었다. “그래 자네 정말 오랜만일세! 그런데 요즘은 무엇을 하고 지내시는가?”
“저요?” 하며 빙긋이 웃더니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직장에서 퇴직하고 남는 게 시간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데 마침 저쪽 공사 현장에서 ‘요즘 일이 너무 바빠 자네가 꼭 필요하니 제발 와서 도와줄 수 없겠냐?’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그쪽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그래~에! 그러면 정말 잘 되었네! 그런데 현장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데?” 묻자 또다시 알 듯 모를듯한 표정을 짓더니 “형님도 참! 제가 공사 현장에 대해서 아는 게 무엇이 있겠어요? 그냥 다니면서 외부인은 일절 못 들어오게 하는 경비를 서는데 사방으로 빙 둘러 담을 쳐 놓은 데 워낙 큰 현장이다 보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도 않고 특히 외부인은 아예 얼씬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심심하겠는데?” “그렇다고 심심할 것 까지는 없고 이따금 대형 트럭들이 자재를 싣고 와 퍼 놓으면 또 다른 대형트럭이 그걸 싣고 가는데 한 번은 ‘무슨 자재가 저렇게도 많을까?’ 호기심에 가 보았거든요. 그런데 대형 파이프나 또 볼트나 너트 같은 자재, 그리고 제가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거의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외국에서 들여온 자재들인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어르신은 여기에 오면 안 되니 저쪽 출입구에서 외부인 통제나 하세요.’ 하며 쫓아내더라고요.”
“그러면 현장 사람들 얼굴을 다 익히셨는가?”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처음에는 얼굴을 모르니 그게 영 답답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느날은 4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셋이 현장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자재 있는 쪽으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래서 ‘그쪽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물었더니 빙긋이 웃더니 ‘제가 여기 현장 소장입니다.’ 하길래 깜짝 놀라 모자를 벗고 두 손은 양쪽 바지 주머니 쪽에 붙인 후 공손하게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괜찮습니다!’ 하더니 급하게 자재 쪽으로 가더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한참을 담당 직원하고 있다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또 모자를 벗고 양손은 바지 주머니에 붙인 채 공손하게‘안녕히 가십시오.’ 했더니 ‘어르신! 앞으로 저를 보면 인사는 하지 마십시오!’ 하더라고요.” “왜 ‘인사를 하지 마라!’고 했을까?” 하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께서 “자네가 인사를 너무 공손하게 하니까 현장 소장께서 부담스러워 그랬을 거야!”
“왜 부담스러운데요?” “자네도 생각해 보게 우리가 평소에 인사를 하면 거의 고개만 까딱하거나 약간 숙인 정도로 인사를 하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붙이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더군다나 나이가 낼모레면 70살을 바라보는 영감이 그렇게 인사를 하니 현장 소장 입장에서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뒤로 제가 인사하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을까요?”/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