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주산 정상에서 운동을 마치고 일행들과 함께 산을 내려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사 주문을 마치고 주인에게 “여기 막걸리가 필요합니다.” 하였더니“마늘이 들어간 막걸리 그리고 그냥 막걸리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걸 가져다드릴까요?” 하자 선배께서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해서 “형님! 마늘 들어간 막걸리와 일반 막걸리가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이던가요?”
“일반은 알코올 도수가 6 프로이고 마늘 들어간 막걸리는 5 프로라는데 마셔보면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고.” “그러면 맛은 그러니까 목 넘김은 어떤 게 좋던가요?” “그것도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알코올 도수가 1 프로 차이기 때문인지 마셔보면 그게 그거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더라고.” “그러면 오늘은 어떤 걸 원하시는데요?”“그냥 아무거나 줘!”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옛날 그러니까 약 40년 전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지난 1977년 12월 나는 전남 신안군 안좌우체국 집배원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시절만 하더라도 섬과 섬을 이어주는 연륙교(連陸橋)가 없던 시절이어서 섬에서 목포 또는 다른 섬에 가려면 여객선을 이용하여야만 가능했고 또 태풍주의보라도 내리면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빈약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주민들은 인심 좋고 정도 많아 나름대로 섬 생활을 잘 적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 그날도 큰 가방에 우편물을 가득 담아 빨간 자전거에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우편물 배달하느라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땀은 등줄기를 타고 계속 흘러내리고 점심때 밥 대신 먹은 라면이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계속 음식 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어디서 빵 하나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가게도 없기 때문에 그냥 마을을 향해서 달리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은 마을로 들어가 우편물을 배달하고 다른 마을로 이동하려는데 누군가 “어이~ 어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마을 영감님 한 분이 대문 앞에서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되돌아가 “어르신 왜 그러세요?”“내가 우리 아들한테 편지를 한나 부쳐야 쓰것는디 자네가 수고 잔 해 주소!” “그런 부탁은 얼마든지 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편지는 어디 있는데요?” “잉! 여가 잔 있어 내가 얼렁 갖고 오께!”하고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하얀 액체가 담긴 바가지를 들고 오시더니 “어야! 내가 자네한테 줄 것은 읍고 그랑께 여그 집이서 막 내린 막걸리를 갖고 왔응께 한 잔 마셔보소!” 하고 건네주신 먹걸리를 받아 마침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목도 마른 데다 배까지 고파 단숨에 마셔버렸는데 그걸 마신 후 약 30분쯤 지나 높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아무리 올라가도 고개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점점 취기가 오르면서 얼굴은 빨개지고 파김치가 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지게 될 정도였는데, 그래도 어떻게 고개를 오른 나는 나무 그늘에 앉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려 바다를 보았더니 안좌면과 팔금면 사이의 바다에 수많은 돛단배가 흑산도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만약 그 시절에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다면 그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날 집에서 담근 술을 마시고 혼이 난 나는 그 뒤로 누가 집에서 술을 담갔다 하면 절대 마시지 않았는데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