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주산 정상에서 운동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사를 주문하면서 주인에게 “여기 막걸리 두 병과 잔 세 개가 필요합니다.” 하였더니 “형님! 막걸리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냥 아무거나 줘!” “그냥 아무거나는 없고 흑마늘과 일반 막걸리가 있는데요.” “그러면 마시기 좋은 막걸리는 어떤 것인가?”
“저는 잘 모르고 그냥 손님들이 달라는 대로 드리고 있어요.” “하긴‘어떤 막걸리가 좋다!’고 그 막걸리만 권하면 주조장에서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겠는데!.” “에이! 그런 것은 없어요. 만약에‘당신 식당에 우리 집 막걸리를 공급할 수 없다!’ 하면 안 팔아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곳에서 배짱을 내밀겠어요?”
“하긴 그 말도 맞는 말이네.”하고 막걸리를 잔에 따르자 “동생 자네도 한잔해 보시지 그런가?” “저는 아직 통금 해제가 되지 않아 못 마셔요.” “통금 해제라니 그것은 또 먼 말이여?” 하자 옆의 선배께서 “이 동생은 몇 년 전 콩팥에 암이 있어 수술을 받어서 아직은 술을 마시문 안되꺼시여!”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라문 우리집에 존 약술이 있는디 그것 한 잔 하문 아조 조꺼인디 그라네.” “이 사람아! 좋은 술이 있으면 자랑만하지 말고 이리 가져와 한잔 권해봐! 그래야 참말로 술이 있는지 없는지 알제! 안 그런가?” “그건 형님 말씀이 맞네요. 그런데 요즘은 집에서 술을 담가 마셔도 괜찮을까요?”
“누구에게 팔지 않고 내가 마시거나 이웃 사람들과 나눠마시는 것은 괜찮다고 그러데.”“그러면 형님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춰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술을 담가 마시면 정말 좋겠는데요.” “그렇지만 요즘은 술도 여러 가지로 잘 나오니 굿이 담가 먹지 않아도 좋은 세상인데 누가 옛날처럼 힘들게 담가 먹겠는가?”
“하긴 형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러네요.”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옛날 집배원으로 근무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힘들었던 1970년대 전남 신안 안좌우체국에서 근무하던 나는‘고향으로 가고 싶다!’며 전남 겸백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하였는데 겸백면에는 외갓집이 있어 가끔 들러 점심을 얻어먹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 그날도 외사촌 형님네에 우편물이 있어 들렀는데 마침 동갑 장이 질부(姪婦)가 “아제! 때 되얐응께 점심 자시고 가씨요.” 해서 잠시 기다리는데 질부가 “반찬이 암것도 읍어서 뒤 밭에 가서 꼬치하고 상추 잔 뜯어 갖고 올랑께 째까만 지달리시요! 잉!”해서 차분하게 마루에 앉아 질부 오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실례합니다. 여기 주인 계십니까?” 물어서 “주인은 잠시 밭에 갔는데 왜 그러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세무서에서 나왔는데 요즘 집에서 술을 담가 마신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여기 부엌문을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곤란한데요.” “왜 곤란합니까?”
“주인도 안 계신데 아무리 세무서에서 오셨다지만 남의 집 부엌 문을 함부로 열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바쁘시겠지만 주인이 오시면 그때 열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하였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그럼 다음에 오겠습니다.” 하고 가버렸는데 나중에 밭에 갔다 온 질부가 환하게 웃더니 “아제! 정말 잘하셨어요.
만약에 부엌문을 열었으면 시아버지 약으로 담가 놓은 술이 있는데 그것도 단속 대상이니 틀림없이 벌금을 물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네요.” 하였는데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농촌에서 술 담가 먹는 것을 단속했는지, 그래도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