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월 한 번씩 있는 정기 산행 일이어서 시간에 맞춰 오늘의 목적지 조계산으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조계산 천자암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 일행은 순조롭게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이 천자암봉(해발 757,4m)을 지나 굴목재(해발 720m)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연산봉을 향하여 가장 험한 지역을 벗어나 시원한 냉장고 바람이 통하는 골짜기에서 “잠시 쉬어 가자!”며 배낭을 벗어놓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순간 “오늘은 맛있는 포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드셔 보세요!” “날씨가 이렇게 무더워도 벌써 햇밀감이 나왔더라고요.” “형님! 어제 밤새 냉장고에서 꽁꽁 얼린 시원한 식혜 한잔하세요.”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는 식혜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이 식혜는 어떻게 얼려왔는가?”
“어제 오후에 냉동고에 넣었다가 아침에 꺼내 신문지로 두 겹 정도 두툼하게 잘 싸서 가져오면 오전 11시에서 12시 경쯤 되면 마치 마시기 좋은 정도로 녹더라고요.” “그래! 이렇게 무더운 날 산에서 시원한 식혜를 마실 수 있다니 그리고 제수씨가 준비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네!” 하는데 옆 후배가 “여기 맛있는 것 하나 드셔 보세요.” 하며 지금은 추억의 과자가 된 쫄깃쫄깃한 쫀디기를 한 개씩 나눠주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귀한 과자를 어디서 구했는가?”
“그걸 사려고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오! 그랬어? 그런데 이건 포장지에 비해 과자는 3분의 일밖에 되지 않은데 너무 양을 줄여버린 것 아닐까?”“그러니까요.” “재료가 비싸더라도 양을 충분히 하고 돈을 더 받으면 될 텐데 아쉽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물가 인상’ 어쩌고 하기 때문에 쉽게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쫀디기는 옛날에 불량식품 아니었는가?”
“그렇지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학생들에게 학교 앞 가게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지 말라고 자꾸 강조했는데, 그게 지금 형님이 잡수고 계시는 쫀디기, 그리고 빨간색이나, 파란색, 노란색 사탕 같은 것을 불량 식품이라고 한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쫀디기를 먹으면 맛만 좋은데 그 시절에는 무슨 근거로 불량식품이라고 했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여성회원께서 “지금 사탕 말씀하셨는데 저의 어린 시절에 보성 읍내 5일 시장에 엄마를 따라서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골에서만 살던 제가 읍내 시장을 가보니 정말 별의 것들이 다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정말 그랬어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누구 집 좌판을 보니 알록달록한 예쁜 사탕이 수북이 쌓여있는데 그중에서도 마치 구슬처럼 둥글면서 하얀 사탕이 정말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한 개만 사달라!’ 아무리 졸라도 끝내 안 사주고 말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고집이 세다 보니 고집을 꺾으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사주지 않으니 어떻게 먹겠어요? 그때처럼 엄마를 원망했던 적은 정말 없어요.”
이야기가 끝나자 다른 후배 부인께서 “저는 어릴 때 마을에 엿 장사가 왔거든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소주병이나 하얀 고무신 떨어진 것 또 쇠붙이 같은 것이 있어 그걸 가져다 엿을 사 먹는데 저의 집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어찌 보니 3분의 2쯤 담긴 요소비료 포대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옆에 거름 자리에 부어버리고 엿을 사 먹었는데 나중에 우리 엄마에게 안 죽을 만큼 매를 맞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거름 자리에 붓지 말고 양동이 같은 데에 부었으면 그렇게 매를 맞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엄마에게 많이 미안하더라고요.”/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