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가까운 곳에 볼 일이 있어 햇볕이 가려진 응달쪽 도로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옛날 초등학교 시절 아주 절친했던 친구가 승용차 창문을 내리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고~오! 이게 누구야? 내 친구 경섭이 아닌가? 자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가?” 묻자 “자네 지금 어디 가는 길인가? 바쁘지 않으면 나랑 점심 식사라도 하면 어떤가?” 해서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 주문을 해놓고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였다. “자네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장흥 장평면에서 살고 있어.” “그래? 자네는 원래 광주에서 살지 않았는가?” “지금도 우리 집사람은 광주서 살고 있고 나만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거든.” “그런데 자네는 원래 장흥군하고는 아무런 연고 없을 텐데 왜 장평면으로 옮기려고 생각했는가?”
“그게 어느날 장흥읍에 무슨 볼일이 있어 우리 집사람과 함께 그곳에 들려 일을 마치고 별생각 없이 장평면으로 돌아 보성 노동면 쪽으로 오고 있는데 보성강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주위를 돌아보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 맘에 딱 드는 집이 내 눈에 보이더라고 그래서 가까이 다가섰는데 마침 팔려고 내놓은 집이어서 바로 집 주인을 찾아 계약을 하고 이사를 들어갔는데 지금 거기서는 나만 혼자 살고 있어.”
“그러면 거기서 혼자 무엇을 하고 지내는가? 더군다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면 혼자 지내기도 적적할 텐데.” “거기 바로 옆집에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은 영감님이 살고 있어 매일 우리 집에 놀러 오거든 그래서 심심하지는 않은데 집 평수가 270평인데 건축 평수를 제하고 나면 그래도 150평 이상 텃밭으로 사용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재작년에 텃밭을 하려고 마당을 파기 시작했어.”
“그러면 잘 파지던가?” “그게 한 번도 파 본 적 없는 땅이라 굉장히 단단하더라고,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팠어!” “아이고! 그 단단한 땅을 다 팠으면 정말 고생하셨네. 그러면 거기다 무엇을 심었던가?” “그래서 옆집 영감님께 물었더니 ‘고추를 심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흥읍에 나가서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거든.” “그러면 잘되던가?”
“하여튼 영감님이 시키는 대로 ‘거름 주라!’면 거름 주고 ‘비료 주라!’면 비료 주고 해서 마른 고추로 10근쯤 수확을 해서 우리 집사람에게 가져다주었더니‘올해는 고추 사지 않아도 되겠다!’며 굉장히 좋아하더라고.” “그랬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겠는데. 그러면 작년에는 무엇을 심었던가?”
“자네도 알다시피 시골 밭에 여름에 심을 작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옆집 영감님이 권하는 대로 또 고추를 심었어!” “그러면 수확은 어떻든가?” “그런데 한두 번 따내고 나니 썩어가는 병‘탄저병’이라고 하던가? 그 병에 걸려 고추가 다 썩어 죽어버렸는데 정말 속이 상하더라고.” “그러면 올해도 심었는가?” “당연히 심어야지 그걸 심지 않으면 다른 작물은 별로 심을 것이 없더라고.” “그러면 병은 아직 안하던가?”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옆집 영감님께서 ‘병이 시작되기 전 미리 약을 치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장흥읍에 있는 농약 판매하는 곳에 들러 약을 달라고 했더니 ‘무슨 약! 무슨 약!’해서 주면서 9만 5천 원을 달라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지금 우리 집 고추가 전부 80주밖에 안 되는데 약이 너무 비싸네요. 했더니 농약사 사장께서 빙긋이 웃으며 ‘그러면 비싼 약 사다 치려고 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고추 사다 드시는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하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