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보성행 차표를 한 장 구입하고 버스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80세가 넘어 보이는 영감님 한 분이 들어오더니 차표를 구입하려고 기계를 조작하고 현금 만원짜리 한 장을 기계에 넣었으나 차표는 나오지 않고 자꾸 뱉어 버리자. 정류장 관리하는 분에게 “으째 기계가 자꾸 돈을 안 묵고 내놔부까?”묻자 “어르신! 그건 돈이 구겨졌거나, 접혀있거나, 찢어졌거나, 상태가 불량하면 그럴 수 있거든요. 혹시 현금 말고 카드는 안 가지고 다니세요?”
“카드가 있기는 있는디 한 번 안 써 버릇한께 잘 안 써지데!” “그런데요. 혹시 이 기계가 이렇게 돈을 자꾸 뱉어 내거나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러지 마시고 카드를 내 보세요. 제가 사용법을 알려드릴게요.”
“카드? 카만있어 봐 잉! 내가 그것을 한 번도 안 써봐서 으추고 쓸지를 모른께 잘 좀 갈쳐줘 보소.” “여기 기계를 보시면 ‘현장 발권’이라는 항목을 선택하시고 그다음 행선지 다시 말씀드리면 어르신이 가실 곳을 선택한 ‘다음 카드를 넣으세요.’ 하면 여기에 카드를 깊숙이 넣고 잠시 기다리면 ‘카드를 빼라’는 메시지가 뜨거든요. 그러면 카드를 빼시고 잠시 기다리면 이렇게 차표가 나오거든요.”
“오~ 그것참! 신기하게 잘되네, 그란디 나는 혹시 기계가 고장나면 으짜까? 겁이 나서 못 하것드라고.” “어르신 그때는 옆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부탁하시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줄 겁니다.” “오~ 그라까?”하는데 얼핏 보아 70세 중반쯤 보이는 남자 두 사람이 버스 정류장에 들어와 차표를 구입한 다음 의자에 앉더니 그중 한 사람이 “요즘 부의금(賻儀金)은 을마씩이나 한단가?” 물었다. “왜 누가 돌아가셨는가?”
“건너 마을에 누가 돌아가셨는데 그분 아들하고 우리 집사람하고 학교 동창이고 그래서 나를 만나도 그렇고 집사람을 만나도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친하게 지내는데 두어 달 전 백 살 되던 날 마을 사람들 불러 식사도 대접하고 그래서 항상 건강하신 줄만 알았는데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더라고.”
“그러면 치매 같은 건 없었을까?” “약간 치매 끼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저기 청소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그러데, 그러니까 집 안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고 주위에 풀을 다 뽑고 하여튼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셨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그렇게 움직이니까 오래 장수하신 건 아닐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백 살까지 계셨으니 장수하신 건 틀림없어. 그런데 자네는 요즘 부의금 안내봤는가?” “그게 그러니까 우리가 젊었을 때는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일주일에 몇 장씩 왔는데 이제 정년하고 나이를 먹으니 친구들과 지인들의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또 자녀들도 거의 모두 결혼을 해서인지 지금은 안 오고 있더라고.”
“그러면 얼마나 해야 할까?” “그건 자네 형편이 좋으면 한 천만 원쯤 해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한 오백만 원만 하든지 하여튼 자네 형편대로 하는 거여!” “옛날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산소에 잘 모셔드리고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건너마을 동생에게 전화가 왔어!” “뭐라고 왔는데?”
“‘형님! 내가 부주금을 내야한디 깜박 이져불고 그냥 와 부렇단 말이요. 그랑께 형님이 이해 좀 해주씨요. 내가 시간난대로 찾아가서 드리께라우!’ 그런데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어도 아무 소식이 없어.” “그러면 쫒아가제 그랬는가?” “아이고! 맨날 집에서 노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것는가? 그런데 그날은 서울에서 윷짝 던질지도 모르는 동생 친구들이 와서 동네 사람들 기분 맞춰줘서 돈을 많이 챙겼을 텐데도 부의를 안하고 말었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