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집사람 생일날 정확히 말하면 3일 전인데 ‘그날은 평일이어서 학생들 학교도 가야 하고 그러니 조금 앞당겨 토요일 날 생일 파티를 하면 어떻겠어요?’ 의견에 따라 가족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초등학교 2학년 큰 손녀가 “우와! 왜 이렇게 미역국이 맛있데?
할머니~이! 국이 정말 시원하니 좋아요~오!” 하는 소리에 식구들이 갑자기“하! 하! 하!” 웃음보가 터졌는데. “경실아! 그런데 니가 시원한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하는 소리냐?” “할아버지도 맛을 보세요! 정말 시원하잖아요!” 하며 너스레를 떨자 옆에 있던 작은 며느리가 “어머니! 미역국에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넣으셨어요? 제가 먹어봐도 정말 맛있거든요.” “특별하게 넣을 게 무엇이 있겠냐? 혹시 큰 새우를 넣어서 그런가?”
“그런데 미역국뿐이 아니라도 어머니가 해준 반찬은 모두 맛있는 것 같아요.” 하자 이구동성으로 “그래 맞아! 할머니가 해 준 반찬은 모두 맛있어!”하는 소리에 모처럼 집사람의 입이 귀에 걸릴 듯 함박웃음이 가득하였고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내가 자취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두가 힘들었던 1970년대. 그 시절에는 TV와 냉장고는 물론이고 수도(水道)도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았던 때이니 겨울에도 힘들었지만 특히 여름철 무더위에는 더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시절 광주 용봉동에서 자취하였던 나는 그때도 변함없이 여름철이 찾아왔는데 집에서 김치 같은 반찬 가져다 놓아도 2~3일이면 시어서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기 때문에 많이 힘이 들었던 어느 날 친구 네 명이 자취방에 놀러 왔는데 특별히 대접할 것도 없던 나는 친구들에게 “야! 너희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 하였더니 옆에 아주 꾀 많은 친구가 “야! 그러지 말고 밥을 여기로 배달해 달라고 하면서 김치 같은 반찬은 특별히 많이 달라고 해라!”
해서 식당에 가서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밥 4상에 김치는 특별히 많이 달라!’ 했더니 얼마 기다리지 않아 식당 아주머니께서 푸짐한 반찬에 밥을 배달해 주셨다.
그래서 모처럼 맛있는 반찬에 식사를 한 다음 남은 반찬은 그릇에 비웠더니 그야말로 아껴먹으면 3일 치 반찬은 넉넉하였다. 그러나 돈벌이도 시원치 않았던 내 처지에 자주 식당 밥을 사 먹을 수 없어 ‘어떻게 하면 걱정을 하지 않고 여름철 반찬을 확보할 수 있을까?’ 연구하였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던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여 자취방에 돌아오니 아랫방 아주머니께서 “총각! 빨리 좀 나와 봐!”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여기 미역 장사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필요하면 사라고!” 하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제가 미역이 필요할까요?” 하자
“요즘 반찬도 없고 그런데 미역이 있으면 물에 불려놨다가 국도 끓일 수 있고 또 줄기를 초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으니 반찬 없는 요즘에 사 놓으면 정말 편리하고 좋을 거야!” 하여 미역 한 묶음을 사서 일단 벽장에 넣어두고 그날 저녁부터 당장 미역국을 끓여 먹기 시작하였는데,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국을 끓일 수 있으니 아침에도 먹고 출근하였다가 퇴근하면 또다시 미역국을 끓여 먹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점점 국이 싫어지기 시작하였으나 특별한 여름 반찬도 없었던 나는 계속 끓여 먹다 보니 점차 입속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토할 것 느낌이 들어‘이제 더 이상은 먹지 않겠다.’며 남은 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옆에 가지도 않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또다시 미역국이 점점 맛있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