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한겨울처럼 강한 추위는 없을 듯 하늘에서 내리는 밝은 햇살은 무척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데, 지난번 차갑고도 강한 바람에도 물러서지 않고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알록달록 가을의 예쁜 조각들은 지나가는 바람과 손을 잡고 아름답고 멋진 춤을 출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매일 조금씩 더 깊어가는 가을들이 모두 모이면 어떻게 될까?’ 괜한 생각을 하며 씩 한번 웃어 보았다. 오늘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시간이 늦지 않도록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온 친구들이 “어서 와!”하고 반겨주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데 몇 년 전 시골로 귀농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친구들 김장은 다들 하셨는가?” “아직 12월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김장이야? 혹시 친구 중에 김장한 사람 있는가?”
“그건 아직 빠르지 않을까? 하긴 강원도 철원에 살고 있는 우리 처제는 지난주에 끝냈다고 하던데 그래도 강원도는 지금 해놓지 않으면 앞으로 며칠 있다 추위가 찾아오면 그때는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날씨가 많이 추워 봐야 영하 7~8도 정도인데 강원도의 한 겨울철에는 보통 영하 11도 그리고 어떤 때는 영하 20도까지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는 아무리 떨어져도 영하 10도 이상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자연히 김장도 늦는 것 아니겠는가?” 하자 시골로 귀농한 친구가 “내가 시골 텃밭에 김장 배추를 심었거든, 그리고 아침이면 일어나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가 살펴보는 게 일인데 어느 날은 배추에 진딧물이 생겼더라고 그래서 옆집 할머니께 ‘배추에 진딧물이 생겼는데 약을 뿌려야 할까요?’ 물었더니 ‘그러지 말고 여그 윗집에 가면 은행 열매하고 무슨 효소를 넣다고 근디 그것을 째깐 얻어다 뿌려봐!’ 하시더라고 그래서 윗집으로 갔더니 영감님께서 ‘이것을 그대로 뿌리문 너머 독한께 물을 째깐 섞어서 이틀 만에 한 번씩 뿌려봐!’ 하시더라고 그런데 그걸 뿌린 뒤로 진딧물도 없어지고 또 골치 아픈 달팽이도 없어졌는데 내 생각에는 곤충 없어지는 약을 뿌리면 진딧물은 물론 청 벌레나 달팽이 같은 것은 모두 없어질 줄 알았는데 진딧물이나 청 벌레는 곤충인데 달팽이는 동물이라서 곤충 약을 아무리 뿌려도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어찌되었건 별다른 이상 없이 배추 농사가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데 어느 날 아침 배추밭에 가보니 낙엽들이 배춧잎에 붙어 있더라고, 그래서 그걸 모두 주워냈는데 다음날 가보니 더 많이 떨어졌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래서 ‘올해는 내가 그래도 별다른 실수 없이 배추 농사를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이면 나뭇잎이 나를 귀찮게 하나? 사람이 못나서 그런가?’ 별생각이 다 드는 거야! 그런데 마침 아랫집 영감님이 우리 집에 오셨어!
그래서 ‘아제! 요새 우리 집 배추밭에는 나뭇잎이 자꾸 떨어져 아침이면 그걸 치우느라 귀찮아 죽겠는데 그걸 안 치우면 안될까요?’ 물었더니 ‘
지금은 배추가 폭이 들지 않아 그래도 속에 있는 나뭇잎을 주워내기가 쉬운데 앞으로 결구가 되면 그때는 나뭇잎이 배추 속에 깊이 들어가면 주워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중에 아무리 잘 씻는다고 해도 결국 나뭇잎과 함께 김장을 할 수 있게 되니 아무리 귀찮아도 아침이면 그걸 주워내고 그게 귀찮으면 한냉사(해충방지망)를 배추 위에 씌워놓으면 나뭇잎 때문에 귀찮은 것은 없어질거야!’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 영감님 말씀대로 그걸 설치한 뒤로 나뭇잎을 주워내는 일은 사라졌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 아랫집 노인들이 안 계시면 농사는 어떻게 지을까? 은근히 걱정이 생기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