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하나 보내려고 우체국에서 번호표를 뽑고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등을 노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중학교 동창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친구 정말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계셨는가?”
“나는 잘 있어 그런데 친구는 어떤가? 어디 아픈 데는 없고?”“아직 그렇게 크게 아픈 데는 없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자꾸 찾아오더라고. 내가 별로 어깨도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탈골이 와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또 왼쪽 다리가 아파서 한참을 고생하다 이제 조금씩 좋아지고 있거든.” “좋아진다면 다행일세. 그런데 자네 전에 광주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시골로 이사와 살고 있어.” “그러면 전 가족이 모두 왔는가?” “그렇지는 않고 우리 집사람은 그대로 광주에 있고 나만 내려왔어.” “그러면 시골살이가 어떻던가?” “그게 특별히 좋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없는데 도시에서 매연에 찌들어 살다 공기 좋은 곳에 내려와 살다 보니 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 좋은 점도 있지만 무언가 필요할 때 쉽게 말해 음료수나 콩나물 같은 반찬 또는 군것질거리 같은 게 필요하면 도시에서는 모든 게 거의 10분 이내면 구할 수 있는데 시골에서는 승용차로 빠르면 30분 그렇지 않으면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것 같아서 그런 점은 불편하더라고.” “그러면 농사는 짓는가?”
“농사는 없고 집안에 조그만 텃밭이 있거든.” “그러면 텃밭 크기가 얼마나 되는데?”“우리 집 대지가 모두 270평인데 본채 그리고 화장실과 조그만 창고 하나 그리고 농기계라야 별다른 것도 없지만 조그만 농기계 창고까지 모두 해서 130평쯤 될 것 같거든 그래서 텃밭은 약 150평쯤 될 거야.” “그러면 텃밭에는 무얼 심었는데?”
“무도 심고 배추도 심고 또 고추도 심고 골고루 심는데 가끔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확할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더라고.” “무슨 실수를 했는데?” “올해 초 이웃집 할머니가 놀러 오셔서 ‘아제! 저그 밭에는 멋을 심글거여?’ 물어서 ‘글쎄요! 무엇을 심을까? 연구 중이네요.’ 했더니 ‘그라문 여그는 참깨 그라고 쩌그는 콩을 심거 봐!’ 하셔서 ‘여기는 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하는데요.’‘그라문 짐장 배추를 심글라고?’ ‘그러면 지금 심으면 안 되는 건가요?’
‘와따아~ 그것은 처서(處暑) 무렵에 심거야제 그것을 지금부터 심그문 되간디, 그라문 짐장을 한여름에 할라고?’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심으면 좋겠어요?’ ‘암말 말고 내 말 듣고 여그는 참깨 그라고 이짝에는 콩을 잔 심고 알았제?’하고 집에 가시더니 ‘이거시 참깨 종자고, 이거슨 콩 종잔께 여그는 참깨! 그라고 쩌그는 콩을 심거! 알았제?’하시더라고 그래서 그다음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참깨하고 콩을 심었거든, 그리고 며칠 후 이웃 할머니 댁에는 며칠 전 심어놓은 참깨와 콩 새싹들이 예쁘게 올라오는데 우리 집에는 아무 감각이 없어!
그래서 할머니께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물었더니‘확실하니 내가 준 종자를 심것서?’하시더라고 그래서 집에 가서 다시 보니 할머니께서 주신 종자는 마루 끝에 그대로 놓여있고 내가 심은 것은 재작년 종자였던 것 같더라고, 그래서 할머니께 이야기했더니 ‘어이그! 콩 떡 같이 말하문 찰 떡 같이 알아 묵어야 쓴 거인디!’하시더니 이튿날 ‘참깨하고 콩 새싹이 너무 배서 솎아왔다!’며 커다란 대야에 많이도 가져오셨더라고. 그래서 그 덕분에 참깨하고 콩을 상당히 많이 수확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엉터리 농사꾼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