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산소와 명당자리

전광투데이 승인 2022.01.10 10:55 의견 0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끝나 가려는지 엊그제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자 누렇게 익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던 시골 들녘의 벼들은 부지런한 농부들이 모두 수확을 끝내고, 콤바인이 지나간 논바닥에는 굵게 패인 시커먼 속살이 드러나 있는데, 먹이 찾는 까치 두 마리 무엇이 못마땅한지 아까부터 계속‘깍! 깍!’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엊그제까지도 길 위쪽에서 도로를 내려다보던 누구네 집 산소의 봉분을 굴삭기로 파헤쳐 시신을 이장하였는지 흙이 나란히 골라져 있고 여기저기 바퀴자국만 남아있었다.
“형님! 혹시 저쪽 산소 이장하는 것 보셨어요?” “글쎄! 저기는 별 관심도 없는데 언제 이장하였는지 알기나 하겠는가? 그나저나 저 집 후손들은‘바빠서 시간이 없다!’며 벌초도 2~3년 만에 한번 밖에 안하던데 어디로 시신은 모셔갔을까?” “아마 여기 보다 더 좋은 명당자리로 모셔갔겠지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요즘 누구 이야기를 들어보면‘조상님 산소 벌초하기 귀찮다!’며 별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데!”
“산소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고요?” “글쎄 그렇다니까! 우리 아랫집 굴삭기 운전하는 동생 있지 않은가? 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대야리(大野里)에서 장동면 쪽으로 계속 가다 왼쪽 산으로 올라가면 산소(山所)가 있다고 그러네!” “그런데요?” “그런데 하루는 그 산소주인이‘일을 해 달라!’해서 굴삭기를 이용하여 산소 봉분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좋은 자리로 이장하려고 그랬을까요?”
“산소주인이 삼남매인데 여동생이라는 사람 둘이 와서 울고불고해서 그 동생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시신을 파헤쳐 놓으니 어떤 사람이 오더니 길 한쪽에 시신을 놓고 토치램프를 이용하여 태우더라는 거야.” “아니 시신을 태워요?”
“글쎄 그랬다니까 그래서 생각하기를‘아마도 시신을 태운 다음 단지 같은 것에 담아 납골당(納骨堂) 같은 곳에 모시려나 보다!’ 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뿌려버리더라는 거야! 그러자 여동생이라는 사람들이‘아니 오빠 지금 부모님 시신에 뭐하는 짓이냐?’따지니까‘벌초하기도 귀찮고 그러니 불로 태워 재는 그냥 여기에 뿌렸으니 생각나면 이리 찾아와 절만 올리면 되지 않겠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더라!’그랬다는 거야.”
“그러면 여동생들이 무어라 했다던가요?” “멀쩡한 부모님 산소를 파헤쳐 시신을 꺼내 불로 태우고 뿌렸으니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여동생들하고 옥신각신 대판 싸움이 났을 것은 뻔한 일 아니겠는가?” “멀쩡한 산소의 시신을 파헤쳐 불로 태웠다면 그 여동생 분들도 정말 황당했겠네요.”
“그런데 우리 처갓집 동네의 누구도 부모님 산소를 파헤쳐 태우려고 했는데 집안사람들이 몰려와‘왜 태우려고 하느냐?’묻자‘벌초하기도 귀찮고 또 요즘에는 모두 그렇게 한다더라!’대답하자 ‘벌초하기 싫으면 그냥 그대로 놔두면 풀들이 자라나면서 몇 년 후에는 자연히 무덤도 사라지는데 그게 싫다고 시신을 꺼내 불에 태운다니 그게 말이나 될 소리냐?’고 하는 바람에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없던 일로 하였다고 그러데!” “하긴 지금 우리 세대는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하는데 우리 후손들은 과연 우리처럼 할까? 하는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벌초하기 싫으면 그냥 그대로 놔둬라! 그러면 몇 년 후나 몇 십 년 후에는 자연히 사라질 테니!’하고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은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네요.”/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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