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치매 올 나이는 아닌데!”

전광투데이 승인 2022.11.20 17:42 의견 0

‘오늘도 여름처럼 무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적중했는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은 따갑기만 한데, 진작부터 황금물결을 자랑하던 시골들녘의 벼들은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는 하얀 머리를 곱게 빗은 억새아가씨에게 자꾸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산행 약속이 있어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모인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고 있을 때 선배님 한 분이 “어젯밤에 우리 친구들 모임이 있었거든.”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회원이 모두 몇 분이신데요?”
“처음에는 열아홉 명이었는데 한사람 두 사람 죽거나 이사를 가더니 이제는 여섯 명밖에 안 남았어.” “그러면 회원 수를 늘려보시지 그러셨어요?”
“그런데 내 나이 이제 일흔이 넘었는데 이 나이에 수를 더 늘리면 무엇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지면 모임 같은 것도 모두 깨버린다고 하더라고.” 하자 옆의 선배께서 “나도 깨 버릴 모임이 하나 있기는 한데 차마 깨자는 소리를 할 수가 없어 지금도 계속하고 있네.”
“그런데 지금 우리 회원이 여섯 명이지만 그래도 부부동반하면 열두 명이니까 더 이상 수는 늘리지 말고 그냥 우리 끼리 재미있게 이어가자! 고 했거든. 그런데 그때 우리 집사람에게 전화가 왔어!” “무엇 때문에 하셨는데요?”
“별로 급한 일도 아닌데 했더라고! 그런데 전화를 받고 나서 어떻게 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집에 가서 보니 휴대폰이 없어 진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식당으로 전화를 했더니 이미 문을 닫았는지 전화를 안 받더라고. 그래서 우리 모임 회장에게 했더니 ‘그걸 내가 가지고 있으니 내일 가져다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그렇게 하셨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디서 갑자기 급한 전화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내가 지금 자네 집으로 갈 테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해서 전화기를 찾아왔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디서 급한 전화 올 데도 없는데 괜히 서둘렀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무등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이 광주 무등산 중머리재를 향하여 새인봉 쪽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첫 번째 쉼터가 나타나“날씨도 무더운데 여기서 잠시 쉬어 가자!” 며 의자에 걸터앉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도 한 모금 마시면서 “오늘도 한 여름 못지않게 무덥네요.” “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절기(節氣)가 있는 것이니 이제 머지않아 날씨가 시원해질 거야.”하며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새인봉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이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어젯밤 식당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던 선배께서 “동생! 나에게 전화 한 번 해 볼란가?” “아니 왜요?” “아무래도 내가 아까 쉬면서 전화기를 놔두고 온 것 같거든.” “또 휴대폰을 두고 왔다고요?”하며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만 갈 뿐 누구도 받지 않았다.
“형님 아무래도 아까 쉬었던 장소로 다시 가셔야 되겠는데요.” “정말 그래야 되겠네.”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서 “여보세요!” “저기 혹시 휴대폰 놓고 가신 분이세요?” “제 폰이 아니고 저의 선배님 폰인데 지금 찾으러가려고 그럽니다.” “그러시면 천천히 내려오세요. 제가 잘 보이도록 손으로 들고 갈 테니.” “잘 알았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서“형님! 내려가시면서 누군가 손에 전화를 들고 온다고 했으니 그분에게 전화기를 찾아오세요.” “고맙네! 그런데 아직은 내가 치매 올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제부터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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