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세탁소

전광투데이 승인 2023.05.21 17:39 의견 0


하늘에서 내리는 밝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길옆 양지쪽에서 누군가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살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땅을 뚫고 올라온 이름 모를 새싹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예쁘게 웃고 있어“너희들은 언제 찾아와 그렇게 웃고 있는 거냐?”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주문했던 바지가 도착하여 길이를 줄이려고 친구가 운영하는 세탁소로 행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친구 오랜만일세!”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동안 잘 있었는가? 몸은 건강하시고? 요즘 재미는 어떠신가?”안부를 묻자
“나야 항상 잘 있는 사람인데 자네는 어떤가?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나이가 몇 살인데 왜 아픈 데가 없겠는가?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혈압 약은 기본이니 말할 것도 없고 심장 약을 먹는 친구도 있고 또 다리 아픈데 먹는 약! 하여튼 나이들이 많아지면서 약을 달고 사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 걸어 다니는 데는 이상 없는가?”
“나는 아직까지 걸어 다니는 것은 이상이 없어! 그런데 자네는 어떤가?” “나도 걸어 다니는 것은 이상이 없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탁자 아래 빈 공간을 바라보니 등산화 2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네 혹시 산에 다니는가?”묻자 대답은 않고 “자네는 아침 몇 시에 일어나는가?” “아침 6시경에 잠이 깨는데 나는 자네도 알다시피 옛날 직장생활하면서 아침이면 6시에 일어나 이불개고, 방 청소하고, 그리고 면도하고, 세수하고, 아침식사하고, 그리고 8시경 출근하니까 항상 그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깨는데 문제는 어느 날은 늦게까지 잠을 못자고 있다가 아침에 늦잠을 자려해도 그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깨버리더라고.”
“허! 허! 허! 그런가? 그런데 요즘 나는 새벽 4시 반이면 잠에서 깨거든 그래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잠 잔 것 같지도 않고 그게 정말 고약하더라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새벽등산인데 그렇게 하고나니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 몇 시경에 산에서 내려오는데?”
“가게 문을 열어야하니 5시경에 나갔다 7시경에 돌아와 가게 문을 열면 그렇게 늦지도 않고 괜찮은 것 같은데 매일 세탁소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어느 날은 갑자기 모든 일이 귀찮아질 때가 있더라고 그래서‘세탁소를 치워버릴까?’하는 생각을 해 봤거든.” “그러면 세탁소를 치우고 무얼 할 건데?”
“시골에 논과 밭이 조금 있으니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일세!” “자네 의견도 좋은데 요즘 젊은 사람들도 농사짓기 힘이 들어‘죽겠네! 살겠네!’야단인데 지금 자네 나이가 70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닌데 젊어서도 안 지어본 농사를 그 나이에 지을 수가 있을까?”
“요즘 농사는 모든 일을 기계로 다 한다고 하니까 트랙터 같은 대형 농기계는 운전하기 힘들지만 경운기나 관리기 같은 소형 농기계를 구입하여 사용하면 어쩌면 지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내 생각에는 싫증이 나더라도 그냥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거든.”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첫 번째는 자네가 세탁소를 치워버리면 내가 옷을 수선하러 어디로 갈 것인가? 물론 다른 세탁소에서도 옷을 수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네가 더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옷 수선한다는 핑계로 자네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또 자네를 통해서 친구들 소식도 들을 수 있으니 옷도 수선하고 친구들 소식도 듣고 일거양득 아닌가? 그리고 자네 입장에서는 용돈도 벌어 쓸 수 있고 또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류상진 전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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