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전화

전광투데이 승인 2024.05.12 17:32 의견 0

봄이 시작되면서 빨간 진달래,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오가는 길손에게 아름다움과 행복함을 선물하더니, 어느새 모두 져버리고 그 자리에 새파란 잎들이 돋아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이 가득해지는 느낌인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꿀벌들이 아까부터 계속 꽃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처럼 집사람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따르릉! 따르릉!’ 집사람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보세요!”하는 순간 “할머니! 저에요! 이슬이에요.” “응! 그래 우리 예쁜 이슬이구나! 그런데 학교는 끝났냐?” “학교 끝나고 엄마랑 함께 집에 가면서 할머니께 전화했어요.”
“오~ 그랬어? 그러면 전화는 누구 전화인데?” “우리 엄마 전화를 빌려서 했어요.” 그러니까 며칠 전 큰아들 내외 그리고 손녀가 집에 다니러 와 점심을 먹으면서 집사람이 며느리에게 “이슬이는‘학교 다니기 싫다!’ 안 하디?”
“아직은 그런 말은 없고 열심히 잘 다니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도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있냐?” “처음에는 손을 잡고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며칠이 지나자‘손잡기 싫다!’ 며 그냥 따라오데요.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학교 가는 길에 신호등만 건너면 ‘엄마!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도 되니까 그냥 집에 가!’하고 혼자서 잘 가데요.” “그러면 안 따라가 보고 그냥 집으로 왔디?” “어디 그냥 올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시원찮아 살며시 따라가 봤는데 가다가 친구를 만나서 손을 잡고 잘 가더라고요.”
“그랬어?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밥을 어떻게 먹던?” “집에서 먹는 것처럼 천천히 먹고 있어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슬이보다 더 느리게 먹는 애들이 여럿 있더라고요.” 그러자 집사람이“이슬아! 학교에서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냐?”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처음에는 말을 잘 안 해서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무어라고 써서 보냈는데?” “‘내가 너를 좋아하니 우리 친한 친구로 지내자!’ 했더니 그 애도 ‘나도 너를 좋아해!’ 답장해서 지금은 친구가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 친구는요 공부하는데 갑자기 ‘오줌마렵다!’ 화장실로 갔거든요. 그런데 안 와서 선생님이 찾으러 갔는데 운동장에서 혼자 놀고 있었데요.”
“그러니까 너는 친구처럼 수업 시간에 밖에 나가 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이슬아! 너 혹시 점심시간에 밥을 조금만 더 빨리 먹으면 안 되겠냐?” “우리 선생님이 밥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밥을 조금만 더 빨리 먹으면 남은 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안 그래? 물론 밥을 너무 빨리 먹어도 안 되겠지만 너무 늦게 먹어도 안 좋은 거야.”
“알았어요. 그러면 빨리 먹도록 노력해 볼게요.” 하더니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할머니! 제가 집에 가면 우리 아빠하고 엄마에게 잘 말씀드려서 또 놀러 올게요. 그리고 제가 핸드폰이 생기면 자주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보고 싶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하였다는데 “할머니! 지금 저는 우리 친구랑 집에 가고 있는데요. 친구 목소리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하더니 “지금 우리 친구가 할머니께 전화하는 것을 보고 지도 할머니께 전화하고 있다네요. 다음에 목소리 들려드릴게요.
그러면 할머니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엊그제만 해도 언제 커서 사람 노릇을 할까? 했는데 벌써 커서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을 보니 많이 컸다!” 하더니 “그런데 왜 내 귓속에는‘할머니! 사랑해요!’ 소리만 들리는 것 같지?”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류상진 전 보성우체국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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