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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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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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하얀, 분홍색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는 시골길 옆에, 하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기고 오가는 길손에게 수줍은 미소를 건네는 억새 아가씨에게, 어디서 날아왔는지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살며시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지나가는 바람은 자꾸 아가씨의 흔들자 실망한 잠자리는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오늘은 옛날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시간이 늦지 않도록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직원이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직 아픈데 없이 잘 걸어 다니고 있으니 건강한 것 같아! 그런데 아우님은 그동안 잘 계셨는가? 그리고 농장에 과일나무를 심는다고 했는데 계획대로 진척이 잘되고 있는가?” “그런데 그게 쉽지 않네요. 나무를 심기 전 누구 말을 들으니 ‘체리가 수익성이 좋다!’고 추천해서 묘목을 구입하여 심었는데 작년 겨울에 엄청 춥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나무들이 모두 얼어 죽어버리더라고요.”
“그러면 사전에‘이 나무는 추위에 약하니 어떻게 하라!’는 정보도 없이 그냥 가져다 심기만 했든가?”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저도 단감농장을 해 본 경험이 있고 또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자네 같으면 별 어려움 없이 농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나무를 심은 것인데 참! 그러나 어찌되었던 그걸 모두 파내고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하겠는데 딱 떠오르는 게 없어 망설이는데 마침 미력면(彌力面)에 선배님께서‘내가 지금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는데 수익도 괜찮으니 그걸 한번 심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오늘 그쪽에 한 번 방문해 보려고요.”
“그런가? 하여튼 무슨 나무를 심든지 잘 생각해서 체리처럼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게! 그런데 지금 자네 나이가 60세가 넘었는데 한없이 농장 가꾸면서 쉬지도 않고 일만 할 생각인가?”
“아니요! 앞으로 한 10년 정도만 하다 아들에게 넘겨주고 편히 살아야지요.” “그렇다면 잘 생각했네! 그런데 옛날에 우리랑 같이 근무하면서 키위 농장을 하시던 강 선배님은 언제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든가?”
“그 선배님은 엊그제 우연히 만났어요.” “그러면 건강하시든가?”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건강한 모습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혹시 어디가 아프다던가?” “아픈 것은 아닌 것 같고 일에 찌들어 그런 것 같아요.” “일에 찌들다니? 그러면 지금도 농장을 하고 계신다던가?” “그러니까요. 그 양반 나이가 올해 87세인가 그렇게 되었는데 지금도‘키위 농장을 계속한다!’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그 정도면 이제는 쉬셔도 되는데 그러네!” “그러니까요. 그리고 그분이 공무원 정년퇴직을 했기 때문에 매달 연금도 나오고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용돈은 충분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도 날마다 키위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팔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운전면허증도 없기 때문에 물량이 적으면 버스를 타고 많으면 택시를 부르는데 ‘교통비도 무시를 못 하겠다!’며 투덜거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양반 욕심이 또 얼마나 많던지 ‘일꾼들 간식도 안 주고 일을 시킨다!’는 소문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일 시켜놓고 돈도 안 주고 떼 먹으려고 한다!’는 소문도 있더라고요.” “일꾼들 간식도 안 주고 또 일당도 주기 싫을 정도면 상당히 욕심이 많은 분인데 그렇게 돈을 모아 언제 쓰려고 그럴까?”
“글쎄요! 제 생각에는 지금부터 열심히쓴다고 해도 당신이 모아놓은 돈 절반도 지못하고 가실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러면 생 죽어라 일만 했지, 자신을 위해 쓸 기회는영원히 사라진 셈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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