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와 네이버, KT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대기업을 상대로 한 폭파 협박이 잇달아 해당 회사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경찰이 수색 인력을 대거 투입하는 등 피해가 막심해지고 있다.
동일인 혹은 서로 다른 인물로 추정되는 각 사건의 용의자는 자신을 향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며칠 새 동일한 방식의 범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 “폭발물 설치”…카카오 CS 게시판 중심으로 협박 이어져

18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최근 잇단 폭발물 설치 의심 신고는 지난 15일 오전 7시 10분께 카카오 CS센터(고객센터) 사이트에 올라온 협박 글에서 시작됐다.
글쓴이는 “카카오 판교 아지트 건물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했다. 카카오 CPO를 사제 총기로 쏴 죽이겠다”고 쓰면서 100억원을 계좌로 송금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경찰은 경찰특공대와 소방대원, 군 폭발물처리반(EOD) 등을 동원해 건물 전체를 수색했으나,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뒤인 17일 오후 7시 4분께 역시 같은 사이트에 비슷한 내용의 협박 글이 올라왔다.
경찰은 이때에도 건물을 층마다 수색했지만, 특이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폭파 협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기업을 상대로 확대하는 양상을 보였다.
18일 오전 8시 48분께 카카오 CS센터 사이트에 “카카오 판교 아지트와 제주 본사, 그리고 네이버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게시됐다.
이어 같은 날 오전 11시 29분께에는 다시 이 사이트에 “삼성전자 수원시 영통구 본사를 폭파하고, 이재용 회장을 사제 총기로 쏴 죽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하루 사이에 피해 대상이 카카오에서 네이버, 그리고 삼성전자까지로 늘어난 것이다.
조금 앞선 오전 10시 50분께에는 “분당 KT 사옥에 사제 폭탄 40개를 설치했다는 협박이 들어왔다”는 KT의 신고도 들어왔다.
KT는 누군가 ‘온라인 간편 가입신청’ 과정에서 이런 폭발물 설치 협박 글을 남겼다고 진술했다.
◇ 10대 학생 소행?…명의도용 범죄 추정 속 순찰 강화
사건의 용의자는 단 한 명일 수도, 서로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상태이다.
1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15일 사건의 용의자는 폭파 협박 글에서 자신을 대구 지역의 모 고교 자퇴생인 A씨라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명의도용으로 인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확인 결과 A씨는 지난달 9일과 이달 9일에도 폭파 협박 글로 인한 신고를 당해 대구남부경찰서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2차 사건인 17일 사건의 용의자의 경우 자신을 광주광역시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인 B군이라고 밝혔는데, 이 또한 명의도용 범죄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나흘간 잇달아 발생한 폭파 협박 글 게시자가 이름을 A씨 혹은 B군으로 밝히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용의자의 정체는 좀 더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폭파 협박 글이 허위인 것으로 판명 난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수색 및 안전 확인 과정에서 해당 회사의 전 직원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거나 관계기관의 인력이 대거 동원되는 등 소란이 빚어지면서 피해가 막심했다.
신고가 집중된 18일 네이버는 본사 모든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권고했으며, 카카오는 제주 본사 직원들에 대해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경찰은 대부분의 신고가 위험성이 낮다고 보면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연계 순찰을 강화하는 등 지역 경찰관을 곳곳에 투입했다.
◇ 용의자 검거 시 공중협박죄 적용…손해배상 청구도 검토
경찰은 용의자 검거 시 공중협박죄를 적용해 처벌하고, 손해배상 청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공중협박죄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중을 대상으로 한 협박이 지속하는 가운데 현행법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3월 18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률은 불특정 또는 다수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내용으로 공연히 공중을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습범은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다.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기존 협박죄의 법정형보다 무겁다.
지난달 11일 신세계면세점 폭파 협박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30대 남성이 공중협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경찰은 폭파 협박으로 인해 낭비된 행정력을 세금으로 환산해 1천256만7천881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신세계면세점 사례에 미뤄보면, 이번 사건 용의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폭파 협박 범죄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개인적 분노와 박탈감의 원인을 사회 탓으로 두고 공중에 대해 범죄행위를 표출하는 것”이라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상동기 범죄와 유사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막기 위해선 범죄를 조기에 차단하고, 중범죄라는 인식을 널리 알려 범행을 억제하는 방법이 중요하다”며 “이와 동시에 민생 문제로 소외감을 느끼거나 피해 의식을 받을 만한 이들이 극단화하지 않도록 보듬어 줄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