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날에 살았던 동네 앞을 지나다 이발소를 발견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벨을 누르자 “잠시만요!”하더니 주인이 안 집에서 빠르게 달려 나와 나를 보더니 “아이고! 동생 정말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계셨는가? 얼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없이 좋구만.” “정말요?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발 좀 하려는데 괜찮겠어요?”
“그럼 괜찮고 말고 어서 이리 앉게!” 하여 의자에 앉자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발소에 놀러 오는 형님들은 안 계시나요?” “요즘에는 없어! 자네도 알다시피 저 아래쪽에 새로운 길이 나면서 사람들 집이 뜯기니 이사할 사람은 이사하고, 또 하늘나라에서 부르면 달려가고, 어쩌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확 줄어버리데, 그런 데다 나하고 친한 사람들은 모두 우산리 아파트 쪽으로 이사를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내밀었는데 요즘은 그것마저 힘든지 통 얼굴을 못 보겠어! 사람이 마음이 변해도 너무 사정없이 변한 것 같아 어떤 때는 정말 서운하더라고,”
“마음이 변해서 그런답니까? 서로 멀리 사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사람은 가까이 살아야 이웃이고 사촌이지 멀리 사는데 어떻게 자꾸 찾아다닐 수 있겠어요?” “하긴 동생 말도 맞는 말일세! 사람은 가까이 살아야 정(情)도 더 깊어지는 것이지 멀리 사는데 어떻게 깊어지겠는가? 그런데 자네 애들은 몇인가?”
“저는 아들만 둘이에요.” “참! 그렇지 옛날 여기 살 때는 자네 손 잡고 이발하러 오기도 했는데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버린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러면 둘 다 학교는 졸업했는가?” “예! 졸업하고 결혼까지 했어요.” “둘 다 결혼까지 했다고?” “둘 다 결혼할 아가씨를 데려왔는데 그냥 시켜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그랬으면 정말 잘했네!”
“그런데 형님은 애들이 몇이세요? 제가 저쪽으로 이사할 때 기억으로는 따님만 셋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그때는 딸만 셋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아들이 꼭 필요한 줄 알았거든 그래서 아들을 하나 더 낳으려는데 자네도 아시다시피 정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던 시기였거든.”
“정말 그랬지요. 그때 저도 결혼할 무렵이었는데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라는 표어를 붙이고 공무원들은 둘 이상 아이를 낳으면 가족수당이나 건강보험 혜택도 못 보게는 하는 정책을 시행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딸 셋 낳고 아들을 낳으려니까 집안에서 뭐라고 야단이고, 또 주위에서도 ‘딸이든 아들이든 애기들 셋이문 충분하제! 무슨 애기롤 또 낳으려고 그러냐!’며 말리는 바람에 포기하기로 했는데 그 뒤로도 마음속에는 항상‘그래도 아들은 반드시 있어야 되니 하나는 더 낳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애기가 안 생겨!
그래서 ‘이제는 틀린 모양이다’ 하고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거든, 그 뒤로 세월이 8년이나 흐른 어느 날 집사람이 갑자기‘임신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 내 마음으로는 ‘저 애를 고등학교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진작 군대 제대(除隊)까지 하고 지금 목포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거든.” “그러면 따님들은 모두 결혼은 했나요? 제 기억으로는 우리 아들들보다 나이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요.” “다행히 딸 셋은 진작 결혼하고 아들도 내년 2월에 결혼 날짜를 받아 놓았거든 그러니 그때 정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지만 않았어도 진작 아이들 교육 다 끝내고 결혼까지 시켰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고, 그런데 그 시절 누구 머리에서 그런 정책이 나왔을까?”/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