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월 한 번씩 있는 정기 산행 날이어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모인 다음 조계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의 차량이 문덕면을 지나 용암 삼거리 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후배 한 사람이. “오늘은 천자암에서 장군봉을 지나 보리밥 집 코스로 가지 말고, 송광사에서 굴목재를 경유하여 장군봉을 돌아 보리밥 집으로 돌아오는 쪽으로 다녀오면 어떨까요?”
“그것도 아주 좋은 생각일세! 그럼 그렇게 하세!”하여 애초의 계획을 바꿔 순천 송광사 쪽으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이 굴목재 방향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등산로는 계속 오르막길에다 커다란 바위, 그렇지 않으면 굵은 돌들이 깔려있고 가끔 습기 가득한 낙엽들이 널려있어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 무척 조심하여야 하였다.
우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굴목재에 도착하여 그늘 쪽 벤치에 앉아 잠시 산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오늘은 맛있는 자두를 가져왔습니다. 드셔보세요!” “여러분이 좋아하실 시원한 식혜를 담아왔습니다. 한잔씩 드셔보세요!” 하며 서로 자신이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 놓았다. “형님은 이쪽으로 산행을 다녀 본 적 있으세요?”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두번은 있었을 거야. 그리고 몇 년 전 선암사에서 장군봉을 지나 여기 굴목재를 경유하여 보리밥 집을 지나 다시 선암사로 간 적이 있었거든.” “그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가요?”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약 40여 년 전 일이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1976년쯤으로 기억되는데, 그해 가을 나와 같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던 친한 직원 4명이 송광사에서 선암사까지 산행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고 대부분 산에서 버너와 코펠을 이용하여 밥을 해 먹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쌀과 반찬, 그리고 국 끓일 재료까지 준비하여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송광사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산을 오르다 중간쯤 계곡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밥도 지어 먹으며 순조롭게 산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선암사에 도착하여 해우소에서 “야! 무슨 화장실이 이렇게 크냐?”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선암사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냐?”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순천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였는데 그때는 이미 밤이 되어버렸고. 보성 행 버스를 타려고 차표를 끊으려는데“방금 막차가 떠났다.”는 대답이었다. 곤란해진 우리는 어떻게 할까? 궁리하는데 “지금 빨리 순천역으로 가면 보성 가는 열차는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택시를 잡으려 하였으나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다급해진 우리는 역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나 뛰었을까? 갑자기‘와장창!’하며 무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친구가 넘어지면서 배낭의 뚜껑을 닫지 않았는지 속에 들어있던 숟가락, 젓가락, 코펠 속에 들어있던 공기 그릇에 쌀까지 튕겨 나와 도로로 와르르 쏟아지고 버렸고. 그 모습을 본 도로를 지나던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지체할 수 없어서 쏟아져 버린 것들을 다시 주워 담고 부리나케 달려 순천역에 도착하였지만 열차는 이미 떠나버리고 없었다.
참! 그때의 난감함이란! 우리가 미리 순천에서 막차 시간을 체크하고 선암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지만 그것도 젊은 시절 한때의 행복한 추억 아닌가 생각하니 문득 그때가 많이 그립다./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