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보내려고 우체국에 들러 접수를 마친 후 뒤돌아 나오는데 누군가 “어이! 동생!”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잘 아는 선배께서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형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어디서 살고 계셨어요?” “나아? 나는 인자 시골로 들어가 살고 있어.”
“아니 식당을 잘하시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시골로 가셨어요?” 하며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마담은 별로 예쁘지 않지만, 양촌리 커피 한 잔 드세요.” 하였더니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시네, 그라고 뭐니 뭐니 해도 커피는 역시 양촌리 커피여!” “그런데 잘하시던 식당을 왜 갑자기 접고 시골로 들어가셨어요?” “그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젊었을 때부터 식당을 벌써 수십 년을 하지 않았는가?”
“그랬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자네 형수가 ‘우리 애기들도 다 결혼시켰고 그랑께 식당 집어치우고 촌으로 들어가 농사나 짓고 편히 살문 으짜것소?’하드라고 그란디 갑자기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그라문 그래 보세!’했거든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나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네 형수는 ‘식당을 수십 년 하다 보니 인자는 지쳐서 솔직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여러 번 했던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시골로 들어가려면 그래도 집이라든가 또 농사를 지으려면 밭이나 논이 있어야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네 형수가 벌써부터 여기저기 알아보았던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식당을 내놓았더니 내놓기가 바쁘게 팔려버렸네.” “그러면 얼마나 받으셨어요?” “그냥 싸게 팔았는데 우리 집 산 사람은 열심히 한 2~3년 잘하면 금방 본전 빠질거여!” “그러면 시골로 들어가 무슨 농사를 지으셨어요?” 묻자 “허! 허! 허!” 웃더니 “그러니까 식당 팔아 그 돈으로 조금 깨끗한 시골집 한 채 준비하고 그 옆에 마침 한 삼백 평 되는 밭이 있어 그것도 구입하였거든.”
“그러면 무엇을 심으셨는데요?” “밭 주인 말로는 ‘여기는 꼬치도 심으문 잘되고, 배추도 잘되고, 또 무도 잘되고, 하여튼 무엇을 심어도 다 잘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의욕만 가지고 밭을 샀어!” “그러면 처음에 밭에 무엇을 심으셨어요?”
“그런데 밭에 무엇을 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밭을 일궈야 씨를 심든 모종을 심든지 할 텐데 그걸 해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트랙터 있는 집을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밭 삼백 평 로터리 치려면 기계 바꾸고 어쩌고 하면 한나절이 걸리는데 그러면 본전도 안 나온다며 안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로터리를 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삽하고 쇠스랑을 준비하여 며칠을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죽기 아니면 살기로 팠어!”
“아니 삽 백 평을 전부 손으로 파셨다고요?” “글쎄 그랬다니까 그래서 고추를 심었는데 한두 번 땄을까? 갑자기 고추가 마치 부스럼이 생긴 것처럼 썩어 물어봤더니 ‘탄저병’이라고 하더라고.” “아니 첫 번째 농사부터 그렇게 되었으면 실망이 너무 크셨겠는데요?” “그러니까 무엇을 하든 잘 알아보고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래서 약은 뿌려보셨어요?” “그런데 무슨 작물이든 병이 오기 전 미리 예방을 해야 하는데 나는 경험이 없으니 알 수가 있었야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막걸리도 한 사발씩 나누고 했더니 금방 친해지더라고. 그래서 시골로 들어간지 이제 3년 되었는데 잘은 몰라도 이제 모종 심는 법. 약 뿌리는 시기 같은 것도 배우고 했더니 이제 조금씩 농사꾼이 되어가는 기분이더라고./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 집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