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농사와 탄저병

전광투데이 승인 2024.10.15 17:08 의견 0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한 채‘우~루~루~쿵~쾅!’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지축을 울리는 천둥소리가 요란하여 “드디어 비가 내리려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장마가 끝난 후 단 한 차례 소나기도 제대로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매우 목마를 텐데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했는데 ‘툭! 툭! 툭!’ 몇 방울의 비가 떨어지더니 이내 그치고 말았다. “하느님! 지금 저하고 장난하는 겁니까?” 강력한 항의를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늘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함께 식사하는데 친구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엊그제 고추 약을 사러 농약 방에 갔거든 그리고 ‘탄저병과 역병 또 벌레 약을 달라!’ 했더니 사장님이 나를 한번 슬쩍 보더니 ‘저기 고추를 몇 주나 심으셨어요?’ 묻더라고 그래서 ‘여기저기 다 합치면 한 70주 정도 될 겁니다.’ 했더니 ‘여기저기 다 합치면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데요?’
다시 묻더라고 그래서 ‘일반 고추가 50주, 그리고 청양고추 5주, 그리고 오이고추가 5주, 아삭이고추 5주, 가지 오이고추 5주 해서 70주’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물었더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손님께서 달라는 약값이 4만 원인데 앞으로도 여러 가지 약이 필요할 겁니다.
예를 들면 노린재나 총채벌레 진딧물 또 바이러스병에 필요한 약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그때마다 약을 구입하다 보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또 약값은 약값대로 드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고추를 사서 드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고추를 사 먹는 것은 내년부터이고 금년에는 이미 많든 적든 고추를 심었는데 약값이 많이 들고 힘들다고 그걸 뽑아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올해는 그렇게 하고 내년부터는 조금 계산해 보고 고추를 심기로 했네.”
이야기가 끝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내가 회천면에 우리 처가 집 밭이 조금 있거든, 그런데 재작년부터 묵혀두어 보기가 싫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작년에 저 밭에 무엇을 심을까? 연구하다 벌교(筏橋)에 있는 종묘사에서 상의를 했더니 ‘고추를 심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걸 심었는데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더니 어느날부터 밭고랑에 풀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고추보다 키가 더 커지더니 그냥 밭을 덮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집사람하고 같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풀을 뽑아내고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부직포로 덮었어! 그리고 나니 고추가 조금씩 빨개지면서 익어가더라고.”
“그러면 그걸 심어놓은 보람을 느꼈는가?” “그걸 따낼 때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거든, 그런데 한번 따내고 나니 어느날부턴가 꺼뭇꺼뭇한 반점이 생기는가 싶더니 썩어가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래서 농약사에서 물었더니 바로 ‘탄저병!’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면 작년 고추 농사는 망쳤겠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금년에는 계획적으로 고추 농사에 도전해 보려고 5백 주를 심었거든 그런데 그걸 심어만 놓으면 자동으로 고추가 매달려 빨갛게 익어 방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다 관리해 주어야 하더라고. 그래서 때를 맞춰 약 쳐야지 가지 잘라 주어야지 또 밭고랑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부직포로 덮어야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앞으로는 하다못해 배추 한 포기 무 하나를 사더라도 절대 농작물 가격을 깎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 봤거든.”/

류상진 전 보성우체국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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